말할까, 침묵할까
말할까, 침묵할까
  • 이승희
  • 승인 2012.04.28 0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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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그렇듯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우리 부부는 결혼하고 몇 년 동안 사소한 싸움이 잦았다. 남편은 성격이 급한 데다 시어머니 표현대로 ‘불뚝골’이 있어 앞뒤 가리지 않고 와르륵 내뱉는 말로 자주 나를 심란하게 만들었다.

서운한 감정을 전하기 위해, 그리고 내가 들은 말이 어떤 의미인지,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생각하느라 조용히 있으면 남편은 빨리 말하라고 채근했다. 비겁하게 내가 침묵으로 자신을 움츠려들게 한다며, 그리고 침묵 뒤에 조곤조곤 따지듯이 말하는 내가 불편하다며 나의 침묵을 일정부분 경계했다.

동료나 고객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상대에게 진심을 제대로 전할 말을 찾느라, 상대가 한 말을 찬찬이 되새기느라, 아니면  속된 말로 기가 막혀서 침묵할 때가 있다. 예전엔 대부분의 경우 침묵이 이심전심의 물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점점 나의 침묵을 자신의 말에 대한 무시나 자신의 주장에 대한 수동적 수용, 자존심 센 자의 항복 표현 등으로 멋대로 해석하는 상황이 많아졌다. 안되겠다 싶어 말을 시작하면 한마디면 될 게 열 마디 스무 마디 길어지고 내가 전하고 싶었던 의사나 마음과는 달리 횡설수설하다 더욱 꼬이고 엇나갔다.

요즘 세상의 언어는 역동적이다 못해 공격적이고 성급하며 파괴적이다. 더욱이 실시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매체들에 둘러싸여 내뱉고 대꾸하고 퍼 나르느라 스스로 말의 주체가 될 침묵의 시간을 잊어버린 것 같다. 아니, 무용하다 평가 절하하고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끊임없이 자신을 봐달라고, 내 말 좀 들어달라고 세상에 말하고 외친다. 침묵하면 마치 자신이 소멸되어 버릴 것처럼 불안해하며 말이다. 독일인 의사이자 작가인 막스 피카르트는 그의 저서 ‘침묵의 세계’에서 ‘침묵을 위한 침묵’이 아닌 ‘말을 위한 침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말은 침묵 없이 존재할 수 없고 말은 침묵의 충만함으로부터 나온다며, 말이 마음 놓고 문장과 사상 속으로 멀리까지 움직여갈 수 있도록 그 밑에 드넓은 침묵을 펼쳐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침묵의 순간이 갖는 성찰과 치유의 힘에 무게를 싣는다.

실제로 침묵을 통해 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거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돌아보게 되었던 경험들이 종종 있었다. 말을 하는 동안에는 모순으로 보였던 것들이 침묵하는 동안 조화롭게 자리 잡기도 했고 괘씸하게만 여겨져 용서를 거부했던 상대를 용서하게 되곤 했다.

상대가 건네는 말 너머의 침묵에서 그가 하고 싶어 하는 더 많은 말을 듣기도 하고 때로는 말로 전해진 것과 다른 의미를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되기도 했다.

어떤 이는 음악을 음악이게 하는 것은 음표가 아니라 사이사이의 쉼표, 즉 침묵이라고 했다. 상대와 나의 이심전심을 위해, 마음을 주고받는 의미 있는 하모니를 위해 침묵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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