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 시립도서관에서 묵언록2
도봉 시립도서관에서 묵언록2
  • 박성우 시인·우석대교수
  • 승인 2012.04.30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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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꽃들이 최루탄을 터뜨리는가
눈이 맵다
귀 막아도 양심처럼 줄곧 파고드는 봄
아, 봄이었나 봄이었구나
서가의 책들이 바보처럼 보인다

결국 몇시간쯤 일찍 나선다
요즘 누가 남을 읽을까
저녁 정거장에 나와 서니
덕성여대생들의 미니스커트가
비로소 눈부시다
종일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
맞은편 빨간 벽돌집 창들마다
흰 계란처럼 불빛 환해지고
글 아는 짐승의 저녁
어디다 쓸 것인가

요즘 누가 불행을 안다고

작품출처 :  김경미(1959-  )『이기적인 슬픔들을 위하여

■ 꽃이 핀다는 것을 알면서도, 꽃이 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부러 꽃을 외면해야만 하는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봄이었나 봄이었구나” 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입시공부와 씨름해야하고 취업준비를 위해 고군분투해야 합니다. 날마다 서류뭉치에 눌려 살아야 하고 서둘러 노후대책도 마련해야 합니다.
봄이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일상에 지치고 찌들다보면 어찌 “서가의 책들”만 바보처럼 보이겠습니까. “종일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 그렇습니다. 봄이 왔다가도 봄을 느끼지 못하면 마음의 봄은 영영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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