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해방구가 필요해!
스마트폰 해방구가 필요해!
  • 이승희 (주)커뮤니케이션 웍스 대표
  • 승인 2012.05.11 0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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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회사 전 직원이 함께 중국으로 워크숍을 다녀왔다. 반드시 급한 업무 연락을 해야 하는 한 두 직원을 제외하고는 다들 무선데이터 요금이 걱정된다며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한다.

점심시간에, 회식 때, 심지어 회의 중에도 스마트폰에 눈 맞추고 문자를 찍어대던 모습과는 영 딴판이다. 끊임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대화에 몰입하지 않는 동료들 때문에 스마트폰을 먼저 쳐다보는 사람이 벌주를 마시자고 한 적도 있었다.

삼삼오오 많은 대화가 오고간다. 사소한 구경거리도 불러 같이 보고 서로 눈짓으로 표정으로 여행지의 감상과 의미를 나눈다. 정작 옆에 있는 사람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카카오톡 친구들에게 미주알고주알 온갖 ‘문자’를 거의 실시간으로 날리던 평소 모습은 전혀 없다. 물리적으로 스마트폰 사용이 단절된 상황이 반갑기 그지없다. 

최근 새로운 아이폰에 탑재된 탁월한 음성인식 기능 시리(Siri)가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화제라고 한다. 현재 있는 다른 음성인식시스템이 실현하지 못한 높은 수준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시리의 싹싹한 캐릭터에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의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리가 자연어 이해와 다양한 인공지능을 제공하면서 사용자의 말을 단순히 텍스트로 바꾸지 않고 그 의미를 이해해서 바꿔준다고 강조한다. 나처럼 노안이 왔거나 여러 이유로 스마트폰에 글을 입력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앞선다. 가뜩이나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사람들이 문자를 넘어 의미까지 이해해주는 음성인식기능 맛을 보고 난 후가 말이다. 내 말이 쉽게 통하는 ‘기계’랑 교신하느라 정작 옆에 있는 복잡한 ‘사람’과의 대화 자체가 끊길까 걱정이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기술이 발전돼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항상 연결돼 있고 소통하는 것 같지만 그저 ‘연결’만을 위해서 ‘대화’를 희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친구들과 일을 하다보면 문자를 날리는 것엔 익숙하지만 대화할 줄 모르는 그들 땜에 당황하게 된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읽을 수 있는 깊은 관계가 돼야 원활하게 일을 나누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내 지적에 그들은 메신저를 통해 ‘늘’ 대화한다고 답한다. 그런데 왜 가끔씩 눈 맞추고 시끄럽게 떠들며 일하던 우리들보다 서로 오해도 많고 일도 제대로 되지 않는지 그들은 모르는 것 같다.

문자에 쓰이지 않는 표정의 의미를 보지 않고 문자에 담기지 않는 목소리의 느낌을 듣지 않으며, 무엇보다 수많은 사람들과 바쁘게 교신하느라 주변사람들과 이심전심의 깊은 관계를 만들어가지 않으니 이를 어찌 알겠는가.

강제로라도 스마트폰의 해방구를 만들어야겠다. 근무시간에는 문자질 하지 말고 입으로, 눈빛으로, 몸짓으로 얘기하도록. 자, 시리(Siri)랑 일할 거 아니면 지금부터 고개 들고 손가락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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