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역 4번 출구- 이상국
혜화역 4번 출구- 이상국
  • 박성우
  • 승인 2012.05.11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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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읽는 서울 박성우 의 Poem Essay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
내 조상은 수백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서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에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작품출처 :  작품출처 : 이상국(1946~), 『뿔을 적시며』

■ 4호선을 타고가다 혜화역에서 내리고는 했지요. 2번 출구로 나가 샘터에 들리거나 3번 출구로 나가 학림다방에서 커피 한 잔 하기도 했지요. 어쩌다가는 4번 출구로 나가 짚풀생활사박물관으로 가거나 신동엽 학회 사무실로 향하곤 했지요. 한번은 혜화여고에 강연을 갈일이 있었는데 무턱대고 익숙한 혜화역으로 갔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지요.
어쩌면 어느 때이든 한번쯤은 혜화역 근처에서 참 자상한 아빠인 이상국 시인과 아빠를 꼭 안아주고는 “아빠 잘 가” 하고 말하는 시인의 딸을 스쳐 지났을지도 모르겠어요. 아, 그 풍경은 얼마나 애잔하고 아프게 예쁠까요. 어버이날이 낀 금요일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보는 한 주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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