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가 2 - 김사인
사랑가 2 - 김사인
  • 박성우 시인·우석대교수
  • 승인 2012.05.18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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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을 어디에 풀까
광화문 복판에서 깽매기나 두들길까
길 가는 아무나 잡고 욕이나 퍼부을까
한강으로 나가 하나씩 돌이나 던져볼까
아흐 얼쑤 날라리 장단에 교보빌딩 쳐들어가 각설이짓이나 해볼까

누가 날 속였나 오가는 사람들 눈여겨봐도
하나같이 착한 얼굴
사느라 힘들어 고달픈 얼굴
웃고 찡그리며 바삐 지나가는데
누가 날 속였나, 어디에도 없는 죄지은 얼굴

어디에 풀까 나는 미쳐 돌아가는데
어디에 풀까 사람들은 어디론가 자꾸만 가는데
어디에 풀까 무서워 숨은 컥컥 막히는데
어디에 풀까 모두 다 선한 사람들
이 서대문 네거리
이 무서움 풀 길 없어 달아날
길 없어 분을 풀
길 없어
없어, 아아 어디에 있나 너
죄지은 얼굴 나약한 얼굴 폭력을 부르는 얼굴 피바람 부르는 얼굴 순진한 얼굴 무서운 얼굴 이미 지나간 얼굴

아흐 아흐 나는 미쳐가는데
내 사랑의 약속 만발하던 옛날 그 자리에 다시 섰어도
없어졌어라 길은
미친 이 사랑 풀 길 없네

작품출처 :  김사인(1956~  ), 『밤에 쓰는 편지』

■  1960년대는 정치적 소용돌이와 경제성장의 문제가 맞물린 시기이지요. 억압적인 정치상황을 극단으로 몰아간 유신체제 하의 1970년대에는 반체제문학의 경향이 자리를 잡게 되고 복잡하고 다양한 시의 모색과 발전이 이루어집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은 계엄령 철폐와 신군부 정권의 퇴진을 요구했지만 신군부의 계엄군은 학생들과 민간인을 체포하고 학살하기 시작합니다. “이 분을 어디에 풀까” 유신정권의 붕괴는 결코 민주주의로 이어지지 못했고 신군부에 의한 새로운 탄압정치가 시작됨으로 해서 무고한 국민들의 희생은 도무지 멈춰질 줄 몰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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