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토박이 봉종옥 할아버지
북한산 토박이 봉종옥 할아버지
  • 이원배 기자
  • 승인 2012.05.18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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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째 북한산에서 거주…“살구 10짝이면 쌀 한가마”
▲ 북한산 토박이 봉종옥 할아버지(오른쪽)와 고향 주민 이재업 할아버지[사진=이원배 기자]

지난 12일, 13일 북한산성 입구 일대에서 이색 축제가 열렸다. 지역 축제와 등산을 결합한 제1회 북한산아웃도어페스티벌이 열린 것이다. 북한산아웃도어페스티벌은 북한산을 끼고 있는 은평구의 특색을 살리고 옛 북한동 주민이 이주해와 형성한 등산용품점과 토속 음식점을 알리기 위한 취지에서 열렸다.

무엇보다 이번 축제는 2004년 시작된 북한산국립공원 정비사업으로 인해서 북한산내에 북한동에 거주하고 있던 45가구가 북한산성 입구인 진관동으로 이주해 와 북한산성마을공동체를 만든 후, 마을을 알리고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노력으로 이 행사를 직접 추진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이 축제에는 정신적 ‘지주’ 몇 분이 계신데 봉종옥 할아버지(80세)도 그 중 한 분이다.

봉종옥 할아버지는 북한동에서 나고 자란 ‘북한산 토박이’이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훌쩍 거슬러 올라가 15대가 거주했다고 한다. 15대가 거주한 고향을 떠나는 기분을 봉 할아버지는 “고향을 버리고와 많이 아쉽다”고 비교적 담담하게 말씀하나 표정에 아쉬움이 짙게 묻어난다.

이주해 오기 전 봉 할아버지는 유원지에서 장사와 식당을 30여 년간 했다. 지금은 북한산초등학교 입구에 등산용품 전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봉 할아버지는 이장으로서-72년부터 36년을 했다-옛 북한동 마을의 듬직한 일꾼이었다. 살구가 많이 나 봄철이면 살구를 따다 팔아 생계를 꾸렸다. 봉 할아버지는 “그때 여기는 살구, 감이 많았지. 지금도 많지만 그때 살구는 인기가 많았지. 10궤짝을 팔면 쌀 한가마니를 살 수 있을 정도로 값을 잘 받았다”고 말한다.

제철 과일 밖에 없던 시절 살구를 시작으로 과일의 계절이 찾아왔다고 한다. 옆에 동석한 이재업 할아버지(85세)는 “그때 살구가 나면 그때서야 과일이 나오기 시작했지. 지금이야 과일이 흔하지만.” 봉종옥 할아버지의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산신제를 지내는 일이었다. 해마다 음력 8월 1일과 10월 1일엔 북한산 산신제를 지내는 데 제를 준비하는 일이 이장의 중요한 임무였다.

음력 8월 산신제엔 소를 올리고 음력 10월 산신제엔 돼지를 정성껏 올렸었다. 산신제는 북한동 마을의 중요한 행사로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5년 동안 중단됐던 산신제는 올해부터 마을 청년들이 주축이 돼 다시 지낼 계획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봉 할아버지가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한국전쟁 전에는 북한산에도 호랑이가 있었다며 호랑이를 직접 본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봉 할아버지의 이야기 속에 북한산의 옛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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