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이창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2.05.1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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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뛰어넘어 옛 가치 복원 통한 미래 서울 만들기”
▲ 이창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약력
2009~   현재 한국방송학회 남북방송통신연구회 회장
2009~   현재 한국방송공사 이사
2008년  시민환경정보센터 소장
1998~   현재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1993년  서울대 대학원 신문학과 졸업(신문학 박사)

 

지난달 26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 6개월을 맞았다. 박 시장은 이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장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불과 6개월 동안 상전벽해와 같이 달라졌다. 이전 10년 동안의 정책방향을 수정하고 전에 없었던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해 왔다. 서울시는 그동안 끊임없이 무엇인가 새로운 정책과 비전을 만들어낸 것이다.

박 시장은 요일별로 일정을 쪼개 진행한다. 월요일은 보고와 면담, 화요일은 청책워크숍과 현장방문, 수요일은 시장 스스로 일정을 기획하는 ‘원day’, 목요일은 다시 보고와 면담, 금요일은 몇몇 사안을 각계 전문가와 숙의한다. 주말은 평일에 미처 챙기지 못한 일정을 소화하거나 행사에 참석한다. 일분일초도 허투루 쓸 수 없는 뻭빽한 스케줄이다. 시장이 직접 서울시의 중장기 정책이나 깊이 있는 정책 자료를 챙길 수는 없다.

이런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는 곳이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다. 시정개발연구원 또한 박 시장 취임 후 달라졌다. 지난 2월 이창현 원장이 취임하면서부터다. 이 원장은 과거 경제관료 출신이 맡던 자리에 발탁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그는 ‘소통의 달인’으로 알려진 언론학자로 ‘개발’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 이창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이 서울의 옛지도인‘ 수선전도(首善全圖)’를 설명하고 있다.[사진=이원배]
-취임한지 100일이 지났다. 그동안 어떤 서울시의 모습을 그렸나.
“도시는 정신적인 가치와 철학이 있어야 한다. 조선의 서울을 그린 지도의 제목은 ‘수선전도(首善全圖)’다. 선(善)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도시라는 뜻이다. 옛 지도를 보며 서울의 원형을 생각해야 한다. 서울은 랜드마크가 아닌 산과 강, 하천 등과 같은 자연적인 지형만으로도 ‘터무니’를 갖추고 있다. 그동안 역사를 허무는 서울시였다면 이제 역사와 가치, 철학을 정립한 서울시를 만들어야 한다.”

-원장으로 발탁되면서 의외라는 평가가 많았다.
“서울시가 소통의 필요성에 따라 결정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소통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소통하지 않으면 개인은 물론 도시도 존재할 수 없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에서 앙코르와트와 마야, 이스터섬 등의 붕괴 이유로 소통부재를 들었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자연과 소통하지 못해 지난해 우면산사태가 벌어졌고 사람과 사람의 소통부재가 용산 참사를 불렀다.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못한다면 도시는 물론 국가의 붕괴를 막을 수 없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소통한다는 것인가.
“원장 직속기구로 소통협력위원회를 만들었다. 오늘 오후 4시 발족식을 갖는다.(인터뷰는 14일 오전 진행했다.) 소통협력위원회를 통해 시민들이 원하는 서울시 정책이 무엇인지 시민들에게 묻고 전문가, 시민단체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해답이 되는 정책을 만들고자 한다. 또 시민들이 직접 연구과제를 제안하는 창구도 활성화하고 1년에 20꼭지 정도의 작은 연구 지원도 진행할 계획이다. 작은 연구 1개 당 500만 원씩 지원한다면 역량을 갖춘 시민단체들이 상당한 성과를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소통과 협력을 통해 새로운 도시의 그림이 나올 수 있다. 연구원은 개방형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 한다.”

-올해가 연구원 설립 20년째다.
“관혼상제라는 라이프사이클로 본다면 관을 갖추어 쓴다는 약관에 이른 나이다. 이제 연구원이 본래의 제 모습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정명(正名)과 정견(正見)을 찾아야 한다. 오는 7월 서울연구원으로 연구원 명칭을 바꾸는게 바로 정명이다. 이제 개발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중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할 때다. 시정 방향도 전문가의 책상을 뛰어넘어 현장에 있는 시민들의 문제제기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이게 바로 정견이다.”

-연구원이 그리는 미래 서울의 청사진은 어떤 모습인가.
“지금까지는 경쟁력에 비중을 두고 시정방향을 제시해 왔다. 여기에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경쟁력이냐는 부분이 빠져 있다. 한강르네상스니 디자인서울 등도 이런 맥락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를 전면 부정하지는 않지만 이제 도시경쟁력보다 시민의 삶이 경쟁력을 갖춘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삶의 질을 높이는 작업은 바로 ‘소셜 디자인’을 말한다. 시장은 앞으로 소셜 디자이너이자 소셜 큐레이터 역할을 해야 한다. 시장 스스로 직접 퍼포먼스를 하고자 한다면 너무 힘이 들 것이다. 시장은 백만 원군의 지휘자가 돼야 한다.”

-연구원 스스로도 변모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연구원의 슬로건은 ‘글로벌 도시 정책 선도하는 싱크탱크’였다. 다음 달 초 ‘시민과 함께 만드는 서울의 미래’라는 슬로건으로 바꿀 계획이다. 글로벌이란 말은 서구사회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또 박 시장의 아이디어로 서울시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뉴욕이나 파리 등 외국의 도시 모델을 가져오는 것도 맞지 않는다. 현재의 정책 아젠다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함께 만드는 아젠다를 설정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박 시장이 연구원에 바라는 점이 있을텐데.
“박 시장은 미래사회연구실을 통해 서울의 미래 만들기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멀리 내다보는 관점에서(long term base) 서울의 미래를 책임지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보다는 미래를 먼저 생각하고 시민의 요구를 잘 수렴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시장이 취사선택하도록 할 계획이다. 박 시장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장이 되고 싶다’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맞다. 임기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임기 내 달성 증후군’에 시달린다. 박 시장은 비움을 철학을 갖고 있다. 광화문광장이나 용산재개발, 서울시 신청사 등을 박 시장이 맡았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비움의 철학이라면 개발 드라이브 정책과 반대 개념을 말하는가?
“그렇다. 세빛둥둥섬은 조성비용 3000억 원과 연관사업비 1000억 원 등 4000억 원을 쏟아부은 사업이다. 이런 예산을 복지에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세빛둥둥섬의 처리 문제는 현재 연구 중이다. 뒷단도리할 일이 너무 많다. 박 시장은 ‘설거지 셰프(chef)’를 맡게 됐다.(웃음) 이런 개발정책을 재고하는 일은 시장이 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의 변화에서 비롯된 요구에 따르는 것이다. 지금 아파트 값을 놓고 보자. 평생을 벌어도 자식들에게 작은 아파트 하나 장만해주지 못한다. 집이 있어도 ‘하우스 푸어’일 뿐이다. 이제 압축성장 패러다임을 버리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 때가 됐다. 시민들의 열망이 이번 텀(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드러났다. 시민의 요구가 박 시장에 의해 구현된다고 이해한다.”

-개발이익을 얻는 정부기관이나 기업, 시민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텐데.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객관적인 지표를 보면 이미 개발정책의 폐단은 백약이 무효하다는 결론이 나온 상태다. 이대로 개발에 연연한다면 서울은 거대한 게토(ghetto)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후손에게 큰 죄악을 저지르는 셈이다. 먼저 개발을 통해 이익을 얻겠다는 환상(판타지)을 깨야 한다. 이미 시민들의 구전으로 이런 환상이 깨지고 있다. 보다 적극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특히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언론은 지금도 ‘버블’이 아니라고 외친다. 언론을 지배하는 자본논리 때문이다. 또 욕망의 정치에 기댄 현 정권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바로 이런 것이 서울시민들의 요구다.”

-연구원의 독립성 유지가 쉽지 않아 보인다.
“며칠 전 서울공공투자관리센터를 개관하는 자리에서 박 시장은 시정연과 투자관리센터가 자신의 정책에 ‘N0!’라고 해달라는 주문을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런 지시는 적극적으로 따를 생각이다.(웃음) 서울시가 요구한다고 해서 타당성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는 일은 적극적으로 막겠다. 연구원 안에서의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겠다. 지금까지 연구원이 독립적이지 못했다는 평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독립성 확보를 위해서는 조직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가져야 한다. 현재 인사권은 갖추고 있으나 예산권을 갖지 못한 상태다. 장기적으로 자립적인 구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오는 7월 ‘개발’을 떼고 서울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앞으로 연구원을 어떻게 이끌 계획인가.
“이번 달 중 연구원 윤리선언을 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시정개발연구원이 시청이나 산하기관의 주문에 맞춘 OEM식 연구를 해왔다는 비판이 있었다. 앞으로 개발 프레임을 허물고 서울시 싱크탱크 역할을 해야 한다. 연구원 조직은 물론 연구위원 개개인의 독립성도 보장받아야 한다. 연구위원들의 의견을 100% 존중하고 임기를 마치는 3년 후 연구원 터전을 닦은 사람으로서 박수 받고 나가고 싶다.”

사진= 이원배 기자 c21wave@seoul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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