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지하 아케이드-서울 (이은봉)
을지로 지하 아케이드-서울 (이은봉)
  • 박성우(시인·우석대교수)
  • 승인 2012.06.01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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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지하상가, 지하 아케이드
땅 속에까지 온갖 상품들, 온갖 물건들 즐비하지
파리바케트 옆 크라운베이커리
크라운베이커리 맞은편 건강음료특판점
거기 지하회랑을 따라 걸으면
좌우로 남성의류점, 악기점, 명함가게, 등산용품점, 란제리가게, 떡집, 복권방, 가방가게, 커피숍……
온갖 물건들 팔리기 위해
몸을 꼬며 전시되어 있지
온갖 상품들 섹시 스타일로 늘어서 있지
거침없이 땅속을 달리는
지하철 2호선을 타기 위해 오가는 발걸음
저부터 사 달라며 붙잡는
저 자본의 수작이라니!
삼성 갤럭시 광고 속 젊은 사내의 몸매가
역시 가장 도시적이지
까칠한 도시 남자, 까도남!
그렇지 여자들의 구매력이 더 높지
을지로 지하상가, 지하 아케이드
이제는 조금 낡았지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된 지도 벌써 30년
낡으면 낡은 만큼 편안해지지
아찔한 도시 여자들, 아도녀들 눈 돌리지 않지
더는 비싼 돈 되지 않지
그래도 걱정 없지 편안한 도시 아줌마들, 편도아도 있으니까
너무도 익숙한 을지로 지하상가, 지하 아케이드
걱정 없지 아직은 없는 것 없지.

작품출처 : 이은봉(1953~    ), 격월간『유심』2011년 11/12월호

■  지하철을 타기 위해 오가는 발걸음처럼 바쁜 걸음이 또 있을까요. 우리는 지하철역에만 닿으면 무언가를 쫓는 듯, 혹은 무언가에 쫓기는 듯 부산한 걸음을 떼고는 합니다. 시간이 남아 좀 여유 있게 걷고 싶어도 곧 다른 걸음에 떠밀리곤 합니다.
총총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무수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여유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리 바쁜 와중에도 우리는 놀랍게도 지하 아케이드에서 쇼핑을 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시간에 쫓기는 게 아니라 ‘빨리빨리 지나가야만 하는 자본’에 떠밀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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