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보육과 보편적 복지, ‘도덕적 해이’
무상보육과 보편적 복지, ‘도덕적 해이’
  • 박차옥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사회권 국장
  • 승인 2012.06.0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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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0~2세 무상보육을 위한 예산이 통과 된 후 언론에서는 연일 우려와 문제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더욱이 보육료 지원액은 지방정부와 분담해야 하는데, 예산이 없으니 중단할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가 나오자 청와대는 지난 6일 국고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일부 언론사 사설은 무상보육을 원점에서 돌아보라고 얘기한다. 보편적 복지의 부작용이 국가 신뢰를 갉아먹고 국민에게 상처를 남긴다면서 영아무상보육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무상보육의 가장 큰 폐해는 젊은 부모들의 모럴헤저드로 확인됐다고 한다. 재정적으로, 교육적으로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은 정책을 계속 끌고 가는 것은 재앙이라며, 선택적 복지로 환원해 정책 실패의 교훈으로 삼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친절히 제시한다.

또한 영아무상보육이 확대되면서 영아어린이집 이용률이 높아진 것이 문제라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권고안인 30%를 넘어 섰기에 문제라고 여기저기서 난리다. 영아는 가정보육이 바람직한데도 정부가 돈을 대는 시설보육을 선택하도록 만든 것이 복지의 함정이라는 것이다.

무상보육이 확대되면서 어린이집을 이용해야 하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 자리가 없어서 어린이집 등원이 어렵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하지만, 맞벌이를 하지 않는 부모 입장에서도 무상보육이니 어린이집을 이용하고 싶은 욕구는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

집 주변에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없고, 잠시 아이를 돌봐주는 시간제 보육서비스를 이용할 방법은 요원하다. 볼 일을 보기 위해서는 아이를 안고, 양손에 짐을 들고 이동해야 하는데 무상으로 아이를 돌봐주겠다니 반가울 수밖에 없다. 만약 정부가 무상보육을 확대하면서 시간제보육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일정 시간동안 ‘비맞벌이’ 부모의 어린이집 이용을 보장하도록 했다면, 재정 확대로 인한 사회적 논란이나 맞벌이가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없는 사태는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영아는 무상보육 대상이 되지만 맞벌이 부부에게는 현행과 같이 어린이집 운영시간 만큼 지원하고, ‘비맞벌이’ 부부에게는 일정시간만 지원하는 정책으로 구성되어야 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한 이후 OECD권고안은 글로벌 스탠더드로 사회경제적 수준을 알 수 있는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런데 ‘0~2세 어린이집 이용율 30% 권고’는 동의하기 어렵다. 외국의 주요나라는 출산전후휴가, 육아휴직제도 이용이 수월하고 차별이 없는 반면 우리는 여전히 임신과 함께 퇴직을 당하고 육아휴직사용도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다.

일하는 여성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며 이중 사회보험 적용을 받는 비율은 35% 에 불과하고 남성의 육아휴직 이용율은 2% 수준이다. 어린이집을 이용하지 못하면 일을 계속하기 어려운 조건인데, 이런 상황에서 OECD 권고안을 들이대는 것은 여성에게 일하지 말고 아이를 키우라고 종용하는 것이다.

70년대 경제성장 이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났지만, 40년이 지난 현재에도 임신 출산기에 경제활동 참가율이 급격히 낮아지는 점을 보면 여전히 우리사회는 여성은 집에서 돌봄을, 남성은 소득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규범을 가진 것 같다. 외국의 사례를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는가 보다. 저출산에 대해 왈가왈부 할 필요 없다.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일개 보육정책으로 저출산 해소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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