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동대문구장- 한양호일(漢陽好日).3
안녕, 동대문구장- 한양호일(漢陽好日).3
  • 박성우 (시인·우석대교수)
  • 승인 2012.06.15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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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지

연계 같은 아이들에게도 집념이 있네. 몇 날 며칠 혹사한 어깨로 던지는 공이 악착같이 포수의 미트를 파고드네. 서울고 이형종*이 학처럼 공을 가슴에 모았다가 공을 뿌리는 순간. 공은 별똥이 되어 대기를 가르며 쇄도하네. 구장을 떠돌던 마른 풀잎, 자잘한 흙먼지가 공의 궤적을 따라 뒤척이고 설레네.

잔치국수 멸치 국물 냄새가 모락모락.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목청을 높이네. 어묵을 우적우적 베어 먹는 아저씨는 왠지 눈시울이 붉네. 아이스크림을 파는 상인도 잠시 경기에 한눈을 팔며 땀을 들이네. 9회 말 일고의 역전승. 이기는 일도 지는 일도 너무 피곤하네. 망연자실한 서울고 응원단을 흘긋 보면서 지는 연습을 하는 솜털 뽀송한 인생들을 느끼네. 목 끝이 아릿한 법이지. 그치?

동대문구장도 이제 혹사한 몸을 누인다고. 청계천에서 온, 황학동에서 온 노점상들의 시름이 경기가 다 끝나고 난 뒤 구장 주변의 적막으로 착 가라앉네. 저편 쇼핑몰의 환한 육체 위로 달빛이 교교하네. 서민들이 이기는 게임을 이제 어디서건 보기 힘들다고 야옹이에게 한마디했더니…… “이봐, 애송이! 싸울 땐 눈에 힘을 주는 거야, 이렇게!”

마구(魔球)다, 막 두 개로 보여. 헉!

* 서울고등학교 출신 야구 선수이다.

 

■작품출처 : 장이지(1976-    ),  시집『연꽃의 입술』
■ 야구 좋아하십니까. 저는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야구는 좋아합니다. 아마도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리던 전국고교야구대회에 대한 열기와 추억 때문일 것입니다. 봉황대기, 황금사자기, 청룡기 그리고 대통령배전국고교야구대회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사람들 여전히 많을 것입니다. 이 시에 나오는 이형종 선수의 역투와 눈물에 가슴 뭉클해 하던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땐 정말 동대문야구장이 세상의 중심 같았었지요.
동대문야구장은 지난 2007년 말에 철거가 시작되었고, 2008년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요. 중구 광희동의 동대문야구장은 사라졌지만 우리들의 추억 속엔 영원히 남아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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