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명예시민 케이피 시토울라
서울시명예시민 케이피 시토울라
  • 이원배 기자
  • 승인 2012.06.2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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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과 한국, ‘정’이 닮았어요”

88올림픽을 통해 한국을 알게 된 케이피 시토울라 씨는 동양을 더 공부하고 싶었다.
1992년 한국에 들어와 발전된 의류 산업이 네팔에 도움줄 수 있을까 해서 의류 공부를 했다.  패션디자인 학원 ‘라사라’에서 1996년에 시작해 2000년에 마쳤다. 한국의 기업과 협의해 네팔에 의류 관련 사업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일 욕심 많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시토울라 씨는 바로 다른 일을 시작했다.
2000년 네팔 관광청 한국 사무소 소장으로 취임했다. 네팔 관광청은 정부 공식 기구로 네팔의 문화와 관광에 대해서 알리고 소개하는 일을 한다.  정부 공식 기관이지만 별도의 지원은 없다. “네팔을 알리는 일은 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 지원이 없어 어려움 점이 있습니다.” 시토울라 씨가 삼청동에서 ‘옴’이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여러 사업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토울라 씨는 서남아시아 지역의 이주민 1세대이다. 혼자 한국어를 배우고 거의 모든 것을 만들어 나갔다. 네팔 이주민 공동체를 만들고 나중에 온 네팔인들을 위한 상담,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해 나갔다.

그 중에서 1992년 입국해 노동자로 일했던 찬드라 씨 사건은 시토울라 씨에게 가장 안타까운 사건으로 남아있다. 찬드라 씨는 식당에서 음식 값 문제로 오해가 생겨 경찰이 임의 동행한 후 행려자로 분류돼 억울하게 6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혀있어야 했다. 이 사건을 접한 시토울라 씨가 적극 나서 그의 인권 유린 문제를 세상에 알렸고 그는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이주민의 인권 활동을 시작했다.

시토울라 씨는 2009년 서울시 명예시민이 됐다. 네팔 문화 홍보 활동과 하이서울페스티벌에 9년간 참여한 것과 다양한 이주민 활동 등을 서울시가 평가 해준 것이다. 그는 “명예시민 50년 간 네팔인은 처음이었다. 처음 명예시민이 돼서 기뻤다”고 말했다.

“1992년 서울의 모습은 그래도 소박한 면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너무 변해버렸어요. 발전도 좋지만 옛 건물 등 문화도 살리면서 변화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시토울라 씨는 “정이 많은 점이 네팔과 한국은 닮았습니다. 히말라야는 전문산악인만 오는 것으로 아는데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입니다. 많이 찾아 주세요”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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