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입 다물라?
그 입 다물라?
  • 이승희 (주)커뮤니케이션 웍스 대표
  • 승인 2012.06.22 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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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남매가 한 동네에 사는 우리 가족 특성상 한 가족만의 비밀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부부싸움이며, 얘들 시험성적이며, 승진 소식까지 이 삼일이면 동네방네 모두가 다 알게 된다. 그 중 유난히 소통속도가 빠르거나 여러 사람에게 중복해서 전해 듣는 것은 얘들이 시험을 잘 치렀다든지 누가 승진했다든지 하는  즐거운 소식이다. 

반면 좋지 않은 소식은 중간에서 끊기기도 하고 아예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워낙 비밀이 없고 거의 모든 고민은 서로 털어놓고 나누는 돈독한 자매애를 자랑함에도 말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쁜 징조나 소식을 전달하지 않거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전달하도록 방관하려는 경향을 ‘함구효과(Mum Effect)’라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일상생활에서 종종 이 효과를 경험한다.

함구효과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1986년의 챌린저호 폭발사건이다. 7명의 승무원을 태운 챌린저호는 발사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 당시 TV로  생중계를 지켜보던 미국 전역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나중에 해당사건을 조사하던 미국의 물리학자 리차드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 항공우주국의 연구원들은 우주선의 엔진이 폭발할 확률을 묻는 파인만의 질문에 200분의 1에서 300분의 1 정도의 확률이 있다고 대답했다. 반면 같은 질문에 그들의 상사들은 10만분의 1의 확률이 있다고 대답했다. 분명 관련 연구 자료가 상사에게 보고되었을 텐데도 서로 다른 답이 나온 이유를 의아하게 여기던 파인만 박사는 폭발확률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상사가 연구원들의 입을 막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사례에서 보듯, 조직 내에서 부정적인 정보가 위로 보고될 때는 함구효과가 나타나기 쉽다. 특히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독단적 성향의 리더가 있는 집단에서는 부정적인 내용은 상대적으로 걸러지고 긍정적인 부분만 전달되기 쉽다고 한다. 

그 이유는 조직 구성원들이 상사의 질책에 대한 두려움과 불편해지는 대인관계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어서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당문제가 본인과 직접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솔직하게 좋지 않은 정보를 전달하면 상사에게 혼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여 의도적으로 부정적 정보를 보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부정적인 정보를 전달할 경우 상대방과의 관계가 불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의도적으로 입을 다물게 된다고 한다.

한때 주변사람들과 대화할 때 마뜩찮은 이야기에는 유행했던 드라마 속 왕 연기를 흉내 내 ‘그 입 다물라’를 즐겨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정작 들어야할 불편한 이야기는 내게 전하지 않았을 텐데, 입 다물라고 나서서 자물쇠까지 채웠으니, 말해주지 않았다고 누굴 탓할까. 다 내 탓이오, 내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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