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논단-소소한 일상을 담은 공간, 현대 유산 추진됐으면…
시민 논단-소소한 일상을 담은 공간, 현대 유산 추진됐으면…
  • 장경민 서울시민
  • 승인 2012.06.22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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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털털’ 언덕을 넘어가느라 용쓰는 오토바이 행렬 소리로 창신동의 하루가 열린다. 골목골목 들어찬 크고 작은 봉제공장으로 원단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들에, 고지대라 생활형 스쿠터들이 더해진다. 이뿐 아니라 흥인지문 사거리에 떼 지어 가는 오토바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히 진풍경이라 할 만하다.

우리 동네 봉제공장의 불은 새벽까지 쉬이 꺼질 줄 모르고 그 불빛을 쫒아 오토바이도 야밤 골목을 누빈다.
 
예전 동대문 의류도소매 상가에 위치했던 봉제공장들이 지금 창신동일대로 옮겨왔다고 하는데, 과연 집집마다 드르륵 재봉틀이 돌아가고 희뿌연 김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면 어림잡아 수백 개가 밀집해 있는 듯하다.

동대문으로부터 낙산으로 이어지는 성곽 밖으로 위치한 창신동 일대는 좁은 구불구불 미로 같은 골목길과 밀도 높게 붙어있는 집과 봉제공장들로 도심과 달동네의 분위기가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밀려드는 오토바이와 사람들이 뒤섞여 정신없이 번잡하고 원주민들이 많아 식구처럼 서로 고성(?)도 오가는 시끌벅적한 곳이지만 상경해 2년 마다 싼 방을 찾아 떠도는 도시유목민일지언정 지금 내가 이 동네 주민인 게 좋다. 차가운 도시생활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람냄새 푸근한 ‘집’ 같아서다.

얼마 전 서울시가 근현대 문화유산을 발굴해 보존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근현대의 역사와 문화 생활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보호하고 활용한다는 취지라는데 구로공단을 비롯해 창신동 봉제공장도 이 계획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새로운 것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대접받는 작금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오래된 달동네의 운명일진데 가뭄에 단비내리는 소식이다.

다시 동네 자랑으로 돌아가자면 창신동 언덕에 둥지를 튼지 해를 넘겼지만 아직 동네탐방의 재미는 끝날 줄 모른다. 고개를 숙여야 드나들 수 있는 성곽 안팎을 이어주는 문을 지나다닐 때면 마치 시간을 넘나드는 것 같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에서 자기만의 추억을 쌓은 공간은 사람과 함께 살아 숨 쉬는 듯 향기가 난다. 감성에 젖어 너무 낭만적인 소리만 해댄 걸까? 티끌하나 변함없이 박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오래되어 낡아 생기는 생활의 불편함은 해소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다만 갈아엎어 무(無)로 만들어 버리는 것으로 대안을 찾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모쪼록 이번 시가 발표한 계획이 앞선 ‘디자인 서울’과 같은 관주도의 전시행정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욕심을 내자면 나와 이웃의 평범한 이들의 일상이 역사로 기록되는 공동체적 공간이 만들어지기를, 훗날 내가 살던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 성곽 귀퉁이 시원한 나무 그늘을 하늘 삼아 누워봤던 작은 정자도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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