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리-권혁웅
가오리-권혁웅
  • 박성우 시인·우석대 교수
  • 승인 2012.06.29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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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리에도 사람이 산다 삼양동에서 수유동에 이르는 여러 개의 언덕을 타고 넘어, 길들이 산자락까지 올라왔다 아침이면 사람들이 떼를 지어 정류장으로 몰려가고, 그들을 삼키려 납작하고 네모난 버스가 천천히 헤엄쳐온다

공초(1894~1963)의 무덤이 근처에 있다 일생을 연기로 날려버린 시인, 그래서 그곳은 늘 상서로운 미세먼지로 자욱하다 연무를 가르며 버스가 출발한다 일정한 곳에서 섰다 갔다 하는 버스는 리드미컬하다 혹은 아싸 노래방과 이 박사, 신호에 걸린 차들과 경적 소리가 그렇다

대낮에 가오리가 텅 빌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잘못해서 오리려 값을 올린 흥정을 가오리 흥정이라 부른다 일생을 잘못 베팅한 자들이 가오리의 오후를 천천히, 시계방향으로, 돌아간다 잎 넓은 가로수들이 박자에 맞추어, 하염없이, 박수를 쳐댄다

저녁이면 산지사방 흩어지는 고기떼처럼, 사람들이 정류장에서 쏟아져 나온다 순서가 중요하다 가오리니까 사람들은 오고 가지 않는다 군생(群生)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 밤이면 사람들을 숨긴 가오리의 집들이 산호처럼 울긋불긋하거나 다닥다닥하다
 

■작품출처 : 권혁웅(1967~    ),  시집『황금나무 아래서』

■ 강북의 ‘가오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가오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바다에 사는 가오리를 먼저 떠올리겠지요.
사람보다 큰 가오리를 떠올리거나 가오리찜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떤 사람들은 쥐가오리나 노랑가오리를 떠올리기도 하겠지요.
어찌되었든 가오리에는 사람이 삽니다. “아침이면 사람들이 떼를 지어 정류장으로 몰려가고, 그들을 삼키려” 가오리처럼 “납작하고 네모난 버스가 천천히 헤엄쳐”옵니다. “값을 올린 흥정을 가오리 흥정”이라합니다. 어떻습니까. 언어의 유희가 기막히지요? “가오리니까 사람들은 오고 가지 않는다” 그럼 어디로 가오리? 읽을수록 참 재미나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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