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피임약 정책안, 여성 입장 반영했을까?
사전피임약 정책안, 여성 입장 반영했을까?
  • 김수진
  • 승인 2012.06.29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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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이 피임약 재분류 안을 발표했다.

기존에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었던 경구용 사전피임약은 전문의약품으로, 사후응급피임약은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사회적 필요성이 요구되는 사후피임약이 의사 처방 없이 약국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사전피임약의 전문의약품 전환은 여성의 피임약 접근성을 현저히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에 피임약 재분류 안 발표 당일, 한국여성단체연합과 몇몇 회원단체들은 ‘경구피임약의 전문의약품 전환을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성명서에 달린 응원 댓글과 더 자세한 의견을 묻는 전화들로 이번 피임약 재분류 안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관심사이며, 여성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식약청의 발표 이후 온·오프라인에서 피임약 재분류 안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다. 계속되는 논쟁 속에 식약청의 주최로 ‘의약품 재분류(안)에 대한 설명회’와 ‘피임제 재분류(안)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그러나 청소년의 성문란과 오·남용, 생명 존중의 문제 등 그곳에서 오가는 다양한 의견들 중 여성 당사자의 건강과 자기결정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피임약은 여성이 스스로 복용하여 호르몬을 변화시키고 임신과 출산과 연관된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임약 재분류는 여성 당사자의 경험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그러나 식약청은 그저 ‘부작용 관리’ 때문에 사전피임약을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해야한다고 말한다. 부작용의 구체적 사례와 통계자료조차 제시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여성들의 실제적인 피임약 복용 목적과 기간은 다양하다. 피임효과를 위한 장기간 복용뿐만 아니라 호르몬 조절과 일시적인 생리 조절 등 다양한 목적으로 피임약이 이용되고 있다. 이번 피임약 재분류는 이러한 여성들의 경험을 반영한 것일까.

더욱이 청소년이나 비혼여성, 장애여성이 산부인과 가는 것이 쉽지 않은 우리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사전피임약이 전문의약품으로 전환되면 피임약에 대한 접근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여러 현실적 문제들에 대한 대응책 또한 제시되고 있는 바가 없다.

만약 식약청이 말하는 것처럼 피임약이 여성의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면 여성들은 다소 불편함과 경제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하더라도 피임약이 전문의약품으로 전환되는 것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피임약과 관련한 여성들의 경험과 피임약 재분류로 인하여 여성들의 당면하게 될 여러 문제들에 대한 고민이 없는 정책을 여성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사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정책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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