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진짜 이상해!’
‘어른들은 진짜 이상해!’
  • 이승희
  • 승인 2012.07.13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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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차 기한이 다된데다가 공간이 좀 더 필요해 사무실 이사를 했다. 전에 있던 회사가 붙여놓은 회의실 유리벽의 영어 스티커를 다 뜯어내고 나니 좀 휑하다. 요즘 유행한다는 ‘어린왕자’ 그래픽 스티커를 구입해 붙였다.

다행히 지구에 서 있는 어린왕자와 머리 위 시계를 바라보는 사막여우 두 장면으로 나눌 수 있어 각각 사무실 입구와 회의실 벽에 붙였더니 심심하지 않다.

오며가며 들여다볼 때 마다 우리 딸의 어릴 적 혼잣말과 어린 왕자의 중얼거림이 묘하게 겹쳐진다.
‘어른들은 아무리 봐도 진짜 이상해.’ 우리 딸이 어렸을 적 자기의 말과 행동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각자 자기주장만 하며 서로 다투는 우리 부부에게, 그리고 가족들과 같이 살면서 늘 외롭다고 투덜대는 이모에게 자주 하던 말이다.

읽은 지 꽤 되었지만 곰곰 생각하니, 어린왕자가 지구에 오기 전 여행하면서 만났던 이상한 어른들의 모습이 내게 어느 정도씩, 아니 상당히 많이 들어 있다 싶어 좀 우울해진다.

어린왕자가 여행한 여섯 개의 별에는 그들 각자 외에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꺾지 않았다.

왕은 아무도 없는 별에서 누군가를 다스리고 싶어 하고, 자만심 가득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모두에게 칭송받고 싶어 한다. 술고래는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일 년 내내 하루 종일 혼자서 술만 마시고, 사업가는 수요 공급도 없는 무인도에서 별을 소유하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한다.

가로등지기는 정작 명령의 실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쉼 없이 가로등 끄기와 켜기만을 기계처럼 무의미하게 반복한다. 지리학자 역시 마찬가지다. 몇 발짝만 걸으면 되는 작은 별에서 꼼짝 않고 누군가 자료를 전해주기만을 기다리느라 허송세월한다. 누가 언제 무슨 자료를 가지고 자신의 앞을 지나갈지에 대한 기약은 없다.

그저 그는 ‘지리학자’라는 것에만 묶여있을 뿐 정작 자신이 해야 할 본분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한다.
어린왕자가 만났던 부조리한 어른들의 일그러진 모습은 요즘 우리 사회 그대로다. 자신의 일방적 주장과 요구만을 되풀이 하며 귀를 막고서 ‘소통’이 되지 않아 문제라고 불평하는 어른들 말이다.

먼저 머리를 숙이는 겸손함이 있다면, 남을 높여주는 진정성 있는 아량이 있다면, 무기력하게 있기보다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발판 삼아 더 성장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물질의 노예가 되어 아등바등 거리지 말고 조금 더 베푸는 마음의 넉넉함이 있다면, 현실에 치이지 않고 꿈과 신념을 갖고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있다면 그게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모든 군상과 부조리를 다 모아놓은 지구라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한 편으론 혼자만 존재하는 별이 아니라서 기대를 해본다. 서로 ‘어른’으로 조금씩 다가앉을 수 있게 참을성을 갖고 노력할 것 같아서.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이고 만나기 한 시간 전부터 미리 행복해지는 그런 관계로 ‘길들일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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