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없는 보도자료는 정중히 사절합니다’
‘팩트 없는 보도자료는 정중히 사절합니다’
  • 조현정 기자
  • 승인 2012.07.20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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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각급 기관과 단체에서는 하루 수십 건씩 보도자료를 생산한다.
우리나라 언론 환경에서 이러한 보도자료는 매우 중요한 취재원이 된다. 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신문, 방송의 기사 중 80% 정도가 각급 기관·단체의 보도자료를 통해 생산된다고 한다.

1개월 단위로 서너 꼭지의 기사를 생산하는 미국 뉴욕타임스 기자들이 부럽긴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그런 취재 환경은 아직 요원하다.

결국 하루하루 쏟아져 나오는 보도자료를 무시하지 못하고 꼼꼼히 훑어보는 게 병아리 기자들의 숙명이다. 특히 민선 자치단체 시대의 각급 자치단체는 경쟁적으로 보도자료를 양산하고 있다. 기사 한 꼭지 한 꼭지가 민선 자치단체장의 이미지를 만들고 다음 선거에서 유리하게, 혹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어느 자치구에서 가슴 따뜻한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이를 단신으로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관련 인물을 인터뷰하면 보도자료에서 강조한 취지도 더 살릴 수 있고 시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해당 자치구에 연락해 이같은 의도를 충분히 설명했지만 곧바로 주겠다는 대답은 한 나절이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담당자는 매우 면구스럽다며 해당 사업은 준비 단계이기 때문에 아직 정해진 내용이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팩트’는 없는, 제목만 남게 되는 보도자료였던 셈이다. 행사 계획을 세워놓고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마련하기도 전에 이를 홍보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선 결과로 받아들였다.

각 자치구의 공보 담당자들의 애환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런 사례는 너무 심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은 작게는 담당자의 실적이 될 테고 크게는 단체장의 실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팩트 없는 홍보가 언론매체를 통해 시민들에게 전해진다면 그 순간 해당 단체장은 시민을 기망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물론 앞으로 그와 같은 일을 할 계획이었다고 우긴다면 할 수 없다. 하지만 시민을 좀 더 무서워한다면 이런 팩트 없는 보도자료를 더 이상 뿌려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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