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아파트*엔 노인정이 없었다 -신수현
시범아파트*엔 노인정이 없었다 -신수현
  • 박성우(시인·우석대교수)
  • 승인 2012.07.20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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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안 용강슈퍼 평상에 숱 듬성한 상고머리 할머니와 검은 파마머리 슈퍼 할머니 슬리퍼 나란히 벗어놓고 올라앉아
……

― 그래 허린 괜찮수?
힘들어서 빨래두 안에다 널어요
― 잘 마르잖아
맞아요. 요샌 눅눅하지두 않구
……
― 저어기 봉숭아 한 나문 왜 없앴누?
아뇨, 누가 뽑아 갔나 봐요
― 꽃이 그중 곱든데
그러게요 꽃이나 좀 따가든지 원
……
(중략)
― 그나저나 빈집들이 많아 손님이 더 없나 봐
형님넨 어디루 가세요? 우리두 옮겨야 하는데 가겟자리가 그리 쉬워야죠
……
……
슈퍼 앞 공중전화부스 끼고 갈래 난 골목길
담장 가 나란히 플라스틱 화분들에 봉숭아, 고추, 치자나무
무료함을 벌서고 있는,
오가는 사람도 뜸한 한낮
이마트 노란 배달차가 들어서자
두 노인 눈빛이 반짝반짝 달려간다

*용강시범아파트, 마포 용강동에서 2010년에 철거된 아파트

■작품출처 : 신수현(1953~  ),  『2011 내가 뽑은 나의 시』

■ 왜 하필 추운 겨울에 철거를 강행했을까요.
서울시가 1971년에 세운 용강시범아파트는 지난 2009년 겨울,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에 의해 철거가 시작되었지요.
동절기 강제철거는 오갈 곳 없는 가난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기도 했고,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어도 형편이 안 되어 떠나지 못하는 사람을 더욱 처절하게 만들기도 했지요.
왜, 개발정책은 언제나 힘없고 가난한 사람의 희생을 바탕에 깔고 시행하는 것일까요. 거기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 있어 녹지공간과 조망권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정녕, 개발보다 사람이 먼저 일 수는 없는 것일까요.
어지간히 후덥지근한 7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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