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S Map으로 본 서울 역사의 거리와 내 인생의 올레길
GIS Map으로 본 서울 역사의 거리와 내 인생의 올레길
  • 손규봉 객원논설위원·주식회사 GIS United 대표
  • 승인 2012.07.20 2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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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 속 멘토, 또는 고독 속의 깨달음

인문학과 멘토의 열풍
일반적으로 도서구매력은 30~40대 여성이 가장 높아 자녀들의 학습서 구매를 포함한다. 인터파크도서의 '2012년 상반기 독자 구성비'의 경우 30대 여성(30.9%)과 40대 여성(24.4%)에 이어 40대 남성이 13.1%, 30대 남성이 11.2%로 그 뒤를 이으며 40대 남성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특히 중년 남성의 인생고민을 치유해 주는 책과 함께 어떻게 여가시간을 보낼지에 대한 해법, 삶의 지혜를 전수하는 고전 등이 많이 읽혔다. 고전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고자 하는 독자의 증가로 ‘논어’, ‘중용’ 등 동양고전을 풀이한 인문서적이 주목 받았다. 20대들은 취업경쟁에서 불안하고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멘토를 찾아 수천 명씩 강당의 좌석을 메우고 있다.

우려도 함께 따른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심신이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해주는 것은 좋은 역할이나 비슷비슷한 책만 양산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성에 도움이 되거나 상상력을 키워줄 지식이 필요한데 힐링 도서로는 채울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어느 직장인은 힐링 책을 몇 권 빌려봤는데 자기계발서처럼 쉽게 읽혀 좋았지만 딱히 남는 게 없었다며 근본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 위로는 공허하다고 했다.

우리시대의 영웅들
절망의 시대는 다시 영웅들을 불러오는가 보다. 2010년 가을 <시사저널>이 미디어리서치와 공동으로 총 30개 분야에서 전문가 1500명이 뽑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선정했다. 김대중(정치·통일·국제외교), 워렌버핏(금융), 정주영·이건희(기업), 스티브 잡스(정보통신), 아인슈타인(과학기술), 백남준(미술), 정명훈(음악), 김수근(건축), 김복희(무용), 임성남(무용), 박원순(시민운동), 유관순(여성), 손석희(방송), 장민호(연극), 앙드레김(패션), 박맹호(출판), 정범모(교육), 장기려(의료), 김택진(게임), 임권택(영화), 이청준·박경리(소설·시), 이두호(만화), 우장춘(농업), 유시민(복지), 최열(환경), 이창호(바둑), 성철(불교), 옥한흠(개신교), 김수환(천주교), 손기정(스포츠) 등이 선정되었다.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영웅들은 그대로인가? <시사저널>의 같은 조사에서 한국사회 전문가 10명 가운데 넷 이상이 고인이 된 리더 다섯 명을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으로 꼽았다. 조사 대상 42.2%가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김구 상해임시정부 주석, 김수환 전 추기경을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으로 지목했다.

생존 인물로 가장 높은 순위에 오른 이는 안철수 당시 카이스트 석좌교수(5.7%), 2010 밴쿠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연아 선수가 7위(4.9%),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8위(4.9%)에 올랐다. 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스티브 잡스 당시 애플 회장(3.5%)이 9위, 10위는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이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박지성(3.4%)이었다.

시대의 부름에 영웅은 재해석된다. 시대는 무덤 속의 위인을 다시 불러와 영웅의 이름을 붙여주기도 하고 위인의 반열에서 밀쳐내기도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퇴임 당시 국정지지율은 27%였으나 서거 이후 시대의 영웅으로 재평가되었다. 노무현은 퇴임 무렵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링컨의 성공요인의 하나로 ‘죽음’을 언급한 바 있다.

남북내전이 끝나고 “죽어버렸거든. 골치 아픈 거 해결해야 될 때는 죽어버렸거든. 전쟁으로 한쪽을 패배시키는 것은 쉽지만, 패배한 상대를 끌어안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그거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성공할 수 없을 때 죽어버렸거든.” 링컨은 남북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1865년 4월 9일로부터 닷새 만에 남부 출신의 배우가 쏜 총탄에 암살 당했다. 역사는 때로 죽음을 배경으로 영웅을 등극시킨다.

▲ 5월 북한산 둘레길 모습
서울, 길 속의 영웅들
8147㎞. 2011년 ‘서울 통계집’에 나온 서울시 포장도로의 총연장길이다. 서울시 소속만 따지면 버스노선은 366개에 총 7534대의 버스가 5378개의 버스정류장을 오가고 있다. 서울의 길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노선이자 거점이다.

서울의 거리 곳곳에 역사적 인물들과 영웅들이 담겨 있다. 어림잡아 서른 곳이 넘는다. 화가 정선의 겸재로, 윤선도의 고산길, 지도제작자 김정호의 고산자로, 최치원의 고운길,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낙성대길, 정약용의 다산로, 김대건 신부의 대건로, 안창호의 도산대로, 고려시대 학자 이집의 둔촌로, 무악대사의 무학로, 김구 선생의 백범로, <경국대전>을 집필한 사가정의 사가정로, 신사임당의 사임당길, 정도전의 삼봉길이 있다.더불어 세종대왕의 세종로, 김소월의 소월길, 방정환의 소파로, 대한제국 의병장 허위의 왕산로, 송시열의 우암길, 원효대사의 원효로, 이이의 율곡로, 을지문덕의 을지로, 실학자 이광수의 지봉길, 진흥왕의 진흥로, 이순신 장군의 충무로, 사육신을 기념한 충신로, 구한말의 순국지사 민영환의 충정로, 이지함의 토정길, 이황의 퇴계로, 효령대군의 효령로가 그러하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정작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고전’이라 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정작 아무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인물을 ‘위인’이라 불러야 하나. 을지로와 충무로를 지나 세종로를 걷지만 우리는 일상의 익숙함 속에서 ‘위인’을 떠올리지 못한다. 역사 속의 인물과 오늘을 사는 우리가 어떤 의미로 맺어지지 않으면 무심히 지나치는 한낱 지명이거나 주소일 뿐이다.

두 개의 길
지난 7월 17일을 기점으로 제주 올레길 430 킬로미터가 끊김 없이 한 바퀴로 완성되었다. 2007년 9월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말리오름~종달리 소금밭~광치기 해변의 제1코스 15.6 킬로미터를 시작으로 제20코스에 추자도와 우도까지 묶어 5년만이다.

올레길은 여러모로 경부고속도로와 대비된다. 경부고속도로는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에서 부산시 금정구 구서동을 잇는 416 킬로미터이다. 1968년 2월 1일에 착공하여 1970년 7월 7일 전구간이 왕복 4차선으로 개통된 후 지금까지 꾸준히 확장되어 왔다.

고속도로는 직선과 속도를 추구한다. 당연히 사람과 물류를 이동시키는 자동차가 중심이라 사람은 함부로 걸을 수도 건널 수도 없다. 올레길은 곡선과 느림을 추구한다. 사람이 중심이라 자동차는 다닐 수 없다. 1970년대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시대의 우선순위 1번이었다. 40년이 지나 우리 시대에는 고속도로의 범람 속에 과속이 아닌 도보의 성찰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구국적 결단’이 낳은 산물이다. 아무도 엄두조차 내지 못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100년을 내다본 ‘절세의 영도력’으로 평범한 이들의 불가능론을 한 번에 뒤집었다. 올레길의 시작은 은퇴한 전직 여성 언론인의 작은 발걸음으로 시작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수백만의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동참하며 아주 느리게 도보 속도로 만들어졌다.

급할 때는 비행기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지만 필요할 때는 구불구불 올레길을 걸으며 삶의 조화를 찾아가고 있다. 직선은 터널과 교각을 필요로 하지만 올레길은 자연에 최소한의 개입만을 추구한다. 고속도로는 A지점에서 B지점까지 도달하는 최고, 최적, 최단 거리를 지향하지만 올레길은 A와 B 사이의 과정에 삶의 성찰을 추구한다.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은 말한다. “길이 사람에게 주는 치유의 능력을 체험을 통해 확신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그동안 제주인들은 특정 공간만이 관광지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모든 곳이 특별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 중요합니다.”

영웅, 멘토, 그리고 우리들
어느 독서모임에서 강준만의 <멘토의 시대>를 읽고 토론했다. 강준만 교수는 12명의 멘토를 선정하여 그들의 긍정적 역할에 주목하고 사회비평을 덧붙였다. 책의 순서대로 옮기자면 비전·선망형 멘토 안철수, 인격·품위형 멘토 문재인, 순교자형 멘토 박원순, 교주형 멘토 김어준, 선지자형 멘토 문성근, 멀티·관리자형 멘토 박경철, 상향 위로형 멘토 김제동, 자유·개척형 멘토 한비야, 경청·실무형 멘토 김난도, 열정형 멘토 공지영, 자유·도인형 멘토 이외수, 재미·계몽형 멘토 김영희 순이다.

흥미롭게도 그들의 공통점은 요즘 젊은 엄마들이 자신의 자식이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성공적인 직업군’에 도달한 사람들이다. 벤처기업가, 의사, 변호사, 언론인, 교수, 주식전문가, 방송 연예인, 국제여행·구호 전문가, 작가, 방송PD 등이다. 젊은 엄마들만 그런가? 아직 사회에 발을 내딛기 전의 20대나 아직 직업이 굳어지기 전의 30대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성공적인 직업군에 속한다고 해서 ‘우리시대의 멘토’ 반열에 저절로 오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젊은이들과 사회적 메시지를 놓고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직업인이라는 경제적 조건에 시대의 아픔과 함께하는 사회적 태도, 두 가지가 맞물려 ‘부러움’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역사적 위인들이 죽음 너머 아스라히 밤하늘에 빛나는 별자리처럼 우러러보는 대상이라면 ‘우리시대의 멘토’들은 눈앞에 살아 움직이고 각종 매체를 통해 언행 하나하나가 매일매일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동시대의 소셜 네트워크 속에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힘겨운 여정에 놓인 사람들에게 희망, 용기, 격려, 위안, 목표, 극복, 긍정의 메시지를 발송하고 있는 것이다.

멘토 열풍에 대한 비판적 시선들
가히 멘토들의 열풍이 불고 있는 이때, 열풍에서 벗어나 현 상황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응시하는 관찰도 있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은 젊은 세대를 ‘자판기 커피’를 마시지 않는 ‘에스프레소 세대’로 명명하고 그들은 정치와 멘토마저 하나의 ‘쿨’한 유행처럼 소비하는 세대라고 분석하고 있다.

“지금 10~20대는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이 자신의 다른 어떤 정체성보다도 우선합니다.” “’강남’이라는 말에 들어있는 것들은 합리적 주장, 상대에 대한 배려, 다양성의 인정, 닮고 싶은 매력, 촌스럽지 않음, 글로벌 경쟁력 등이에요. … 이들은 모든 걸 소비의 대상으로 봅니다. 심지어는 정치인도요. … 닮고 싶다. 이런 욕망이 있는 거죠. 강남성에 대한 동경.” 박성민이 대담집 <정치의 몰락>에서 언급한 대목이다.

성공회대학교 신영복 교수는 ‘멘토는 계몽주의 틀에서 나온 낡은 패러다임’이라며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내가 59학번(1959년 대학 입학생)인데, 이런 내가 08학번들의 20년 후 삶에 대해 멘토링 할 수 있겠어요? 멘토는 크게 보면 과거 경험으로 미래의 자유로운 경험을 제액(提掖·도와서 인도)하는 경향이 있죠. 부딪치는 모든 것들로부터 배우고 사랑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정보는 다운로드 받으면 되고 지식은 수련 과정을 통해 닦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지혜는? 이는 철저히 고독해지는 과정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성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나온 지적이다.

진정한 인문학과 멘토링
대형서점 검색창에 ‘멘토’를 입력했다. 검색 결과, 종교 분야 143권, 자기계발 분야 120권, 경제·경영 분야 109권을 포함하여 국내서적만 모두 993건이 소개되고 있다. 장서 수 390만권으로 국내최대를 자랑하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인문학’을 검색했더니 도서정보(914건), 연속간행물(1917건), 비도서정보(37건), 온라인자료(2812건), 기타정보(59건) 수 천 개의 조회결과가 화면에 떴다.

다시, 인문학과 멘토의 열풍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흘러가는가? 자신의 삶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지 않는 인문학은 허망하기 쉽다. 선망의 시선은 열등감과 자괴감으로 직진할 수 있다. 바로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자기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않고 남의 업적과 성취만을 추종하는 ‘열풍’은 내 삶의 터전을 하찮게 취급할 위험도 크다.

제주도 관광은 한때, 단체여행이나 신혼부부들이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며 우와 감탄하고 단체쇼핑을 하는 게 대세였다. 촉박한 일정에 쫓겨 렌터카를 타고 소문난 명소에 들러 사진을 찍고 맛집 몇 군데를 소화하기 급급하다. 그러나 올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관광버스를 타고 운전사가 편하게 실어다주는 코스에서 벗어나 어디서나 멈춰서 360도로 둘러보며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느끼게 된다.

인문학이란 것이 베스트셀러를 사서 읽고, 유명인의 강연회에 다니고, 트위터에 팔로워가 되고, 의무감으로 고전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에 있을까? 세종대왕의 어록과 내 아버지의 어록을 꼭 비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떤 메시지라도 받아들여 내삶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의미있게 변화시켜 나갈 것인지를 궁리하는 것에 인문학이 있다. 나와 남의 삶을 연관해서 이해하는 곳에 인문학의 꽃이 핀다.

어린 동생이나 후배로부터 무엇이든 괜찮은 것은 배우려는 삶의 자세에 멘토링이 숨어있다. 내가 영향을 받은 사람이 영웅이건 유명인이건 동네 분식점 사장님이건 택시 운전사건 의미 하나 하나를 나만의 건축물을 만들어가는 기둥과 벽돌로 써볼 일이다.

남의 삶을 굳이 헐뜯거나 숭배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내 삶도 과소평가나 과대평가할 필요도 없다. 남의 인생이 근사하다면 내 삶도 충분히 괜찮을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만나는 속도의 위력도 인정하고, 올레길에서 만나는 느린 성찰도 긍정할 수 있다. ‘길은 따로 주인이 없어 그 길을 걷는 사람이 주인이다.’ 특정 인생만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생이 나름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올레길은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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