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 시인 창작그림책 『암흑식당』
박성우 시인 창작그림책 『암흑식당』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2.08.10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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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어둠은 생명의 근원이라는 나지막한 속살거림
▲ 박성우 시인·고지영 화가의 '암흑 식당'

‘상상을 다시 뒤집는’ 싱싱하고 힘이 센 상상

투둑 투두둑 툭툭. 빗소리일까? 생선 굽는 소리일까?
칙폭 칙폭 칙칙 폭폭 치익. 기차 소리일까? 밥이 되는 소리일까?

창작그림책 <암흑식당> 중 일부

단 한 점의 빛도 없는 캄캄한 식당. 종업원의 손에 이끌려 테이블 앞에 앉으면 차례로 음식이 나온다. 나이프와 포크를 어렵게 찾아 두 손에 든다. 음식은 어디 있지? 어렵사리 고기 한 점을 입에 넣는다.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잔뜩 긴장한 혀의 미뢰가 폭발한다.

“맛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식당. 암흑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이렇게 어렵사리, 특별한 맛을 보게 된다.

박성우 시인과 고지영 화가는 이런 암흑식당을 그린 창작 그림책을 펴냈다. 한 점의 빛도 없는 공간 풍경을 화가는 그리고 시인은 씨줄 날줄의 글을 입혔다. 시인은 책을 통해 암흑식당이 결코 낯선 곳이 아님을 알려준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자궁에서 무려 십 개월 남짓한 시간을 머문 적이 있다고 되짚는다.
‘상상을 다시 뒤집는’ 싱싱하고 힘이 센 상상이다.

|시인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이처럼 암흑을 이겨 내고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고난도 잘 이겨 낼 수 있다고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아직 암흑의 세계에 머무는 아기부터 빛의 세계로 나온 어린이와 어른까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그림책이다. 어둠이 삶에 주는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속삭인다.

암흑의 세계에는 별처럼 눈부신 생명이 있고, 맛있는 음식과 사랑이 담긴 대화와 든든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있다. 몰론 아무것도 안 보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꼼짝할 수 없거나 잔뜩 긴장해서 넘어지거나 소리를 지르고 발길질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곧 깨닫게 된다. 무척 아늑하고 신 나며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깊은 어둠 속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냄새를 흠흠 맡으며, 요리를 톡톡 건드려 먹어 보기를 권한다. 암흑을 배경으로 한 생기와 온기 가득한 글과 그림은 다채로운 소리, 냄새, 촉감으로 다가온다.

암흑을 그린 화가는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의 움직임과 소리, 냄새를 쫓아 암흑이 선사하는 무한한 깊이와 심리적인 긴장감 등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연필을 닮은 물감을 사용해 동양화처럼 겹겹이 중첩되는 뿌옇고 묵직한 느낌으로 바닥도 높이도 알 수 없는 암흑의 상태를 재해석했다.

또 콩테나 색연필, 트레싱지 등의 다양한 재료를 써서 매력적이고 다채로운 어둠의 면면을 표현했다. 식당 안의 커튼이나 의자, 조명, 음식 하나하나까지 심사숙고해서 그 구도를 잡았고, 색 역시 미세하게 그 톤을 달리해서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일렁이는 착각이 들게 한다.

무한한 우주의 공간을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어딘가를 꽉 붙들고 싶어지게 만들며 암흑식당 속의 상황에 완벽히 몰입하게 한다.

박성우 시인은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거미>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청소년시집으로 『난 빨강』, 동시집으로 『불량 꽃게』를 펴냈다.

신동엽 창작상, 윤동주 젊은 작가상 등을 받았고 본지에 매주 박성우의 포임에세이 <아침을 여는 시>를 연재하고 있다. 현재 우석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지영 화가는 대학에서 그림을 공부하고 개인전을 여러 차례 열었다. 무채색의 색감을 살린 그림책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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