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 고은
그 집 - 고은
  • 박성우
  • 승인 2012.08.16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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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대 어릴 적
돈암동 개울 건너 그 집
삼선교 지나
동도극장 지나
돈암동 전차종점 못미처
다락방과
높은 장독대가 있는 그 집 자리
아직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중략)
그대의 돈암국민학교
그대의 광화문 호박밭여고
그대의 신촌
대학생 시절의 다방
그대의 어디어디
그곳에 가서
그곳에 가서
그대의 지난날을 사랑하지 않으면
지금의 사랑이 하현달 밤 지지러질 것이므로

꼭 그곳에 가서
그대의 지난날까지 악쓰며 사랑해야 하건만
아직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늦가을에는 갈 것입니다

■작품출처 : 고 은(1933~      ),  시집 『상화 시편-행성의 사랑』

■ 더위의 절정에 닿은 팔월입니다. 너무 더워서 밀린 일을 더 뒤로 미뤄둔 채, 선풍기를 끼고 엎드려 뒹굴뒹굴 시집을 읽었습니다. 이런저런 시집을 뒤적이다가 고은 시인의 『상화 시편-행성의 사랑』을 만났습니다. 운이 좋게도 고은 시인의 사랑시집을 읽는 동안 더위를 까마득 잊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고은 시인의 문학인생 최초의 사랑시집은 한마디로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였지요. 이 무더위를 잊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지난날까지 악쓰며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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