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철나무 아래 저녁-공광규
사철나무 아래 저녁-공광규
  • 박성우 시인·우석대교수
  • 승인 2012.08.31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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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사철나무 꽃이 마당에 우박으로 쏟아지는
뜰과 대숲이 깊은 성북동 수연산방이다

마루에 누워 있는 주름이 가득한 늙은 다탁을
저녁 햇살이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있다

솟을대문 앞 수국은 당신 얼굴로 환하고
화단에는 금낭화가 주렁주렁 팔찌를 걸어놓았다

송판 덮개를 씌워놓은 옛 우물
한지등 눈을 가진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의 당신과

허물어진 성곽 그늘을 지나오면서
당신에게 나를 허문 게 언제였던가를 생각했다

오후를 넘어 저녁 어스름으로 어둑어둑 깊어가는 찻집
찻물처럼 깊어지는 당신

섬돌 위에 앉은 다정한 구두 두켤레에
사철나무 꽃이 점 점 점 꽃잎 자수를 놓고 있다

■작품출처 : 공광규(1960~  ),  계간『창작과비평』, 2012 가을호.

■ 성북동 수연산방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가 상허 이태준의 고택입니다. 1933년-1946년까지 기거하면서 「달밤」,「돌다리」등의 작품을 쓴 곳이라고 하지요. 1999년에는 외종손녀인 조상명씨가 이태준 작가가 지은 당호인 ‘수연산방’을 따서 전통찻집을 열었다고 합니다.
수연산방에 가면 “찻물처럼 깊어지는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요? “오래된 사철나무” 그리고 “뜰과 대숲이 깊은 성북동 수연산방”에 들어 “마루에 누워있는 주름이 가득한 늙은 다탁”을 만지며 이태준 소설가에 취해도 좋을 것 같고, “당신에게 나를 허문 게 언제였던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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