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합헌 결정 유감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합헌 결정 유감
  • 권미혁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 승인 2012.09.07 11: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단체연합릴레이 칼럼
권미혁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낙태’는 매우 논쟁적인 주제이다.
현실에서는 공공연하지만 알고 보면 범죄인 낙태, 즉 임신중절은 법규범과 법현실의 괴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법조항 중의 하나이다.

이같은 괴리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 2010년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낙태시술 병원과 낙태의사에 대한 고발이다. 법의 강한 억제력을 통해 임신중절을 규제하려 했던 이 시도는 임신중절이 경감되는 효과보다 많은 부작용을 낳으며 사실상 실패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은 천정부지로 오른 임신중절 비용을 감내하며 위험한  불법 비공개 시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여성의 건강을 위해 임신중절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와는 반대되는 결과인 것이다. 또 이번 헌법소원을 제기한 조산원의 케이스처럼 임신 시킨 상대남성이  관계 지속, 혹은 관계 단절을 목적으로 낙태죄를 활용하는 사례가 생겨나게 되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낙태시술 근절운동’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깨달은 것은 법률상 낙태금지주의에도 불구하고 사실상의 규제 불가능성이야말로 ‘낙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청하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이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합헌 결정은 여러 면에서 문제적이지만 다른 무엇보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학습해온 낙태를 둘러싼 위와 같은 지형에 대한 고려와 성찰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헌재는 “낙태를 처벌하지 않거나 형벌 보다 가벼운 제제를 가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낙태가 만연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낙태는 근절되지 못했다.

그리고 낙태율은 낙태를 불법화하고 있는 나라에서 더 높다는 통계도 있다. 많은 나라에서 이미 여성에게 임신중절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2008년 4월 유럽심의회는 유럽의 47개 회원국에게 “임신중절 금지는 임신중절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낳지 않고, 임신중절을 금지하는 것은 대부분 비밀리에 행해지는 임신중절로 이어지며, 이는 여성에게 더 많은 정신적 외상을 일으켜 위험하다”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또한 “임신을 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는 헌재의 결정은 큰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임신중절을 둘러싼 담론은 그동안 ‘정신’에 비해 낮게 평가되던  인간 몸에 대한 관심과 자기 결정권에 대한 긍정적인 접근이라는 점에서 변화되고 있다.

그리고 가부장 질서 아래서 오랫동안 국가와 사회에 의한 몸의 통제를 경험한 여성에게 결정권을 돌려주는 것은 21세기적 시민권의 중요한 내용 중에 하나로 고려되고 있다. 즉 “낙태과정에서의 여성의 경험을 반영하되 여성의 재생산과정 전반을 이야기하지 않고 분절적으로 임신중절만 처벌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흐름은 4명의 헌법재판관이 주장한 “적어도 임신 초기에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낙태를 허용해 줄 필요성이 있고 개인의 의사결정이나 권리를 침해할 때는 최소한에 그치도록 해야한다“는 내용에 반영되어 있고 이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이번 헌재결정은 그 기조에서 과거에 비해 나아진 면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과 유감이 남는다. 아무리 법을 다루는 영역이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경향이라 하더라도, 법도 어느 정도 사회 흐름을 따라가야 하며, 실질적으로 선도하는 경우도 많았다는 점을 헌법재판소는 기억해주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