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보기 싫습니다. 요즘 언론 왜 이럽니까”
“뉴스 보기 싫습니다. 요즘 언론 왜 이럽니까”
  • 최소영 직장인
  • 승인 2012.09.0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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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보면 세상 사람들이 너무 무섭고 딸 걱정에 잠도 잘 못 잔다”는 일찍 결혼한 친구의 한숨 섞인 전화를 받고 나도 “그래 말이야, 아이고…” 그 다음은 서로 말이 없다.

씁쓸한 것이다. 비단 그 친구만 그럴까.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나주 사건으로 도배된 언론을 보면, 이제는 공포스럽다.

오늘 아침 대형 포털 사이트를 보니, 메인화면 톱뉴스 8개중 6개가 성폭행 관련 기사다. 나주 사건을 비롯해 잡지 못한 성폭행범이 5년 새 몇 천 명이라는 뉴스, 화학적 거세를 확대하겠다는 뉴스, 제2의 나주 사건이 발생했다는 뉴스, 그리고 어린이학대 동영상에 이르기까지 온통 성폭행 관련 기사로 가득차 있었다.

게다가 ‘나주 성폭행범 “PC방서 애 엄마 만난 건 충격”알고 보니…’, ‘성폭행범 카메라 꺼지니 돌변 이럴 수가’, ‘피해자가 운이 없어서…경악’. ‘성폭행범 미니 홈피 대문 보니 헉’ 제목 또한 자극적이다 못해 폭력적이다.

언론의 보도가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고, 상업적인 것을 넘어서, 이제는 폭력적이란 생각에 무섭기까지 하다. 이런 성폭행 사건을 앞 다투어 보도하는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 를 위한 것이라며 스스로 평가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픽으로 상세하게 설명한 피해자가 사는 집의 약도, 일기장, 학교 친구, 가해자의 유년시절이 과연 국민의 알권리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보도가 성폭행 피해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더 크게 확산시키는 것을 모르는지 묻고 싶다.

피해 어린이와 가족의 인권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적이 있다면 이렇게까지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내지는 않을 것이다. 또 ‘씻을 수 없는 평생 상처’, ‘피해 어린이 이제 어떻게’ 등의 제목과 기사는 사건의 피해자가 마치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편견을 갖게 하는 것 같다.

피해자의 고통에 우리 모두 마음이 아프고, 분노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이겨내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먼저여야 한다. 언론이 이 피해자의 삶을 단정하고 몰아가지 말아야 한다.

예전 아동성폭행 피해 가족이 결국 살던 동네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웃들과 예전처럼 지낼 수 없게 만드는 이 모든 일들이 언론의 무책임한 선정적 보도로 인한 2차, 3차 피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론보도를 통해 이러한 사건을 접하는 독자들, 딸을 기르는 내 친구를 비롯한 우리들 모두 이 보도의 피해자다. 내가 기대하는 언론의 역할 중에는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선한 목소리’가 있다. 그런데 요즘 언론의 보도는, 공동체에 대한 불신과 의심을 증폭시킨다. ‘알고 보니 옆 집 아저씨’, 이웃 사람’ 등의 제목과 기사들이 넘쳐나는 탓이다.

늘 지나가던 골목길을 들어서는 것도 가끔 멈칫하게 한다. 어쩐지 이 사람과 함께 길을 걸으면 저 문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다. 언론이 과장된 공포를 조장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지금의 언론은 너무나 실망스럽다. 요 며칠 더욱 그렇다. 사안에 대한 보도, 논평, 대안을 제시하는 저널리즘 본연의 뜻을 가슴에 새기고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저널리스트들이 있다. 그리고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 지금도 밤잠을 설치고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제발 독자들에게도 희망이 되어 돌아오기를 바란다. 내가 언론을 통해 보고 싶은 것은 비록 내가 직접 볼 수 없지만 공동체가 조화롭게 유지되는데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내 이웃 사람도, 내 옆집 사람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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