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호박 - 정우영
서울 호박 - 정우영
  • 박성우 시인
  • 승인 2012.09.07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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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에 심은 호박이
제법 물도 오르고
암꽃 수꽃도 피워
무공해 호박 맛 좀 보나 했더니
벌나비가 오지 않는다
수정되지 못한 애기 호박
줄줄이 시커멓게 타 죽어가는데도
벌나비는 끝내 찾지 않는다
쓸데없는 똥파리만 잉잉거릴 뿐,
기다리는 벌나비는 영 오지 않아서
수술을 통째로 끊어
암꽃마다 박아놓았더니
그 중 몇 송이
소담스런 애호박 둥글게 키워올렸다
출퇴근길 물 뿌리며
어서 커라, 이놈아! 살맛나는 호박아!
염불 외듯 다독거렸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랫도리부터 잎사귀가 마르기 시작하더니
그예 줄기까지 싹 타버렸다.

■ 나비랑 벌은 왜 걷지 않고 날아다닐까요? 저는 그게 뜬금없이 궁금해져서 몇 날 며칠이나 궁리를 해 본적이 있어요. 그러다가는 문득 무릎을 치며 이런 결론을 내렸죠. 나비랑 벌이 안 걸어 다니는 것은 발에 흙이 묻으면 꽃이 더러워지니까 팔랑팔랑 윙윙 날아다니는 것!
좀 엉뚱한 결론이라고요? 그렇다면 왜 ‘서울 호박’에는 호박꽃이 피어도 벌이랑 나비가 팔랑팔랑 윙윙 날아오지 못했던 걸까요? 왜 똥파리만 잉잉거렸던 걸까요? 살다보면 왜냐고 묻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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