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록 - 신동원
참회록 - 신동원
  • 박성우 시인·우석대 교수
  • 승인 2012.09.14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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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라
지난 여름의 살가림이여
어둠 속 은밀히 엿보던 눈짓들이여
청계에서 수유리까지, 영등포에서 종로까지
표적새긴 가슴마다, 찢겨진 참회록의 갈피마다
떨어져 날리는 꽃잎들
또 한번의 정확한 조준을 위하여
어둠을 등진 사내들은 깃발을 올리고
거리에서 만나는 힘겨운 얼굴마다
땅심을 겨누고 타오르는 창끝 같은 눈빛들.
찢어 가거라, 마침내 내 부끄러움마저
저 눈빛들이여.
얼룩진 깃발 은밀히 엿보던
내 말라붙은 눈물꽃 이파리마저도.

■작품출처 : 신동원(1959~      ),  시집『오늘은 슬픈 시를 쓰고 싶다』

■공기가 확 바뀌었습니다. 빨랫줄처럼 축축 늘어지던 사람들의 어깨가 펴졌습니다. 폭염에 찡그러지던 이마도 원래대로 돌아왔고 짜증이 앞서던 마음도 이제는 제법 여유를 찾았습니다. 가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이 가고나니 자꾸 고개를 돌려 지난여름이 머물다간 자리를 더듬어보게 됩니다.
이 시는 구호와 최루탄이 난무하던 지난 80년대의 여름을 되돌아보며, 어찌하지 못한 지난날의 ‘부끄러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살가림” 이란 긴소매 옷을 입어 맨살이 드러나지 않게 가리는 일. 나도 모르게 살이 탄 팔과 손등을 만져보면서 까맣게 타들어가던 지난 시대도 더듬더듬 더듬어봅니다. 하늘빛이 바뀌고 물빛이 바뀌고 시대가 바뀐 서울의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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