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시작 광화문 그리고 서울
인연의 시작 광화문 그리고 서울
  • 김민자 기자
  • 승인 2010.10.20 17: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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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나의 서울이야기> 수상작 ①] 대상 최지은씨

서울타임스는 서울시가 주최한 ‘잊지 못할 나의 서울이야기’ 1차 공모전에서 수상한 8편의 작품을 서울시의 협조를 얻어 차례로 게재합니다. 서울시는 지난 7월 15일부터 9월 15일까지 ‘서울’이라는 주제로 서울의 숨은 명소와 감동적인 이야기, 서울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그린 작품을 공모했는데, 총 303편의 응모작품 중 대상 1명, 우수상 2명, 장려상 5명을 선정한 바 있습니다. <편집자 주>

오늘은, 결혼한 지 정확히 두 달 되는 날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주말에도 약속이나 한 듯이 광화문에 다녀왔다.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담겨져 있는 그곳에서, 우리가 세 번째 만났던 그 날을 다시 한 번 떠올리고 돌아왔다.

남편과의 첫 만남은, 그야말로 ‘그저 그렇다’는 표현이 정확할 만큼의 평범했다. 형식적인 문자가 오고 가고, 두 번째 만나서 영화를 보고 밥을 먹을 때에도 남편에 대한 내 느낌은 ‘잘 모르겠다’ 였다.

남편이 세 번째 만남을 청하고, 약속을 정한 후 나는 나도 모르게 “이번 영화는 제가 보여드릴께요. 예매하고 연락 드릴께요.” 라고 했다. 어쩌면, ‘남자’로서의 느낌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그런 사심 없는 말을 주저 없이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말한 후, 나는, 일부러 신촌에 있는 극장으로 예매했다.

그의 집도, 우리 집도, 신촌에서는 멀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했다. 이유는 단 하나, 지방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 되는 그 사람에게 나름의 서울 구경을 시켜주고 싶어서였다. 태어나면서 서울 생활을 한 나에게는 일상이 되어버린 종로, 광화문, 을지로, 명동이 그에게는 새로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우리는 신촌역에서 만나 영화를 보았고, ‘여기는 O O 대학이고, 여기는 O O 대학이다’ 하면서 대학가를 돌아다녔으며, 다시 버스를 타고 세종호텔 앞에서 내려 명동을 돌면서 일본인들에게 나름 유명한 쌈밥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러고는, 시원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을지로 입구 쪽으로 나와 길거리 음식을 한 손에 들고 청계천을 걸으며 광화문까지 갔다. 광화문 광장에 예쁜 연잎 모양의 우산이 달린 벤치가 놓여져 있는 것을 알았기에, 최종 종착지로 광화문을 택한 것이다.

밤이 되면 삼삼오오 모여들어 한가로움과 시원함을 즐기기에 최고의 장소라고 생각 되었다. 그런데, 광화문 광장에 가니 그 동안 조용하고 쑥스러움 많아 보이던 남자가 열 살 꼬마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광화문 광장에 있는 분수대로 향하는 것이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조명이 시시각각 변하는 그 곳, 바닥에서 예고 없이 물이 튀어 나와 많은 사람들이 옷을 엉망으로 버리면서도 화내지 않는 그 곳, 분수 밖에서 바라보는 세종로 사거리와 분수 안에 들어가 보이는 세종로 사거리가 신기하게도 다르게 보이는 그 곳, 그 곳에서 지금의 남편은 너무나 즐거워했고, 너무나 밝게 웃었다.

▲ 광화문 광장앞 분수. ⓒ서울시 제공

타이밍을 잘 맞추면, 옷을 망치지 않고도 분수대 위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며 순식간에 어린 아이가 되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제가 서울 올라온 지 3년이 지났는데, 광화문 처음 와 봤어요. 필요한 책이 있어서 교보문고에 온 적은 있지만, 지하철로 왔다 갔기 때문에 지상으로 올라와 볼 일이 없었죠. 광화문이, 세종로 사거리가 이렇게 예쁜 곳인지 몰랐어요. 2002년에 붉은 악마로 가득 메워진 이 거리를 TV에서만 봤었는데, 내가 이렇게 와 보네요. 사실, 남자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부러 이런 곳에 돌아다니게 되질 않아요. 애인도 없는 제가 이런 낭만적인 곳에 올 일이 있었겠어요? 지은씨 덕분에 신촌도 처음 가보고, 말로만 듣던 청계천도 처음 가보고, 광화문에도 처음 와 봐요. 처음 하는 것들이, 모두 지은씨와 함께네요.” 소개받은 이 남자가 그 날, 가장 길게 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나에게도 ‘진심’이 되어 다가왔다. 지방에서 올라온 순진한 남자와, 어색한 시간을 갖는 게 불편해서 생각한 서울 나들이가 그에게 행복한 추억을 선물한 샘이 된 것이다. 그 날이 계기가 되어, 우리는 알콩달콩 데이트를 시작하게 되었고, 주말이면 서울시내 어디든지 걸어다닐 수 있는 곳이라면 서슴치 않고 다녔다.

종로 3가에서 만나 인사동을 거닐다가 안국동 쪽으로 넘어가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예쁜 카페에 들러 차도 마시며 쉬다가, 다시 일어나 삼청동 쪽으로 발길을 돌려 시원하고 칼칼한 김치말이 국수나 역대 어느 대통령이 단골이었다는 수제비 집에 들려 요기를 했다.

좀 멀리 나가고 싶은 어떤 날에는 6호선을 타고 하늘공원에 올라, ‘저거는 무슨 대교, 이거는 무슨 대교’ 하면서 한강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다리들을 가리키며 놀다가, 해가 질 무렵 선유도 공원으로 발길을 돌려 한강을 바라보며 낭만을 즐기기도 했다. 그렇게, 광화문은, 그리고 서울은 우리에게 최고의 데이트 장소를 시기적절하게 제공해 주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나는, 광화문 광장에서 그에게 청혼을 받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거라는 기상청 예보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그 날, 가로수마다 눈꽃 모양의 등을 매달아 놓아서, 더욱 겨울 분위기가 물씬 풍겼던 광화문 광장에서, 나는 그의 진심을 받아들였고, 올 5월에 결혼했다.

광화문에 갈 때마다, 청계천에 갈 때마다 우리는, 우리가 처음 광화문에 함께 갔던 날 나누었던 대화들을 다시 끄집어 낸다. 이제는 지겨워질 법도 한 그 말들을, 다른 사람이 들으면 아무렇지도 않을 그 말들을, 둘이서는 재밌다며 떠들어댄다. 지방에서 30년을 넘게 살아온 한 남자가, 이제는 나와 함께 이 곳 서울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하나씩 둘씩 만들어 나가고 있다.

충분히, 아무것도 아닌 만남이 될 수 있었던 우리를, ‘인연’으로 엮어 준 광화문 광장. 오늘도, 에어컨 소리만 조용히 들리는 사무실에서, 갑자기 광화문행 버스에 오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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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상 2010-10-27 11:34:16
신촌,광화문,삼청동 매일 지나는 이곳, 지은님 러브스토리 아름다운 한편의 영화같습니다. 저또한 출, 퇴근으로 매일 두번씩 달리며 바라보는 광화문 광장입니다. 지은님 글을보고 서울도심 한복판에서도 이런사랑이 시작되는구나? 하며 웃어봅니다. 그동안 저한텐 업무차, 그리고 출,퇴근으로 교통체증을 감수하며 다닌곳을 내일부터는 여유롭게 달릴거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될 연인은 뭘해도 된다는걸 공감하는 좋은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