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삼성을 생각한다
다시, 삼성을 생각한다
  • 김원진
  • 승인 2012.09.15 1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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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공정하고 깨끗한 기업이다’, ‘노조가 없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정부의 대기업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

K의 생각은 아니다. 가까운 지인 A가 싸트(SSAT·삼성직무적성검사) 모의고사를 풀어보고 알려준 문항이다. A는 분개했다. 이건 사상 검증이 아니냐며 투덜거렸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이미 오래 전부터 ‘시민단체는 반드시 필요하다’, ‘삼성맨이라 불려지길 원한다’, ‘오너경영은 좋지 않다’와 같은 문항이 존재해왔다고 한다.

반면 같은 시험을 본 다른 친구 B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적성검사라는 건 기업과 그 사람이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지 알아보는 게 아니냐며 K에게 반문했다. 중이 절이 싫으면 절을 떠나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니꼬우면 삼성(에 입사지원서를) 안 쓰면 되는 게 아니냐는 투였다.

대기업의 하반기 공채가 시작됐다. 학교 곳곳에는 취업설명회니 캠퍼스 리쿠르팅이니 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한 대형서점의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싸트 관련 수험서가 9위와 10위(각각 인문계와 이공계)에 올랐다. K의 여자 동기(08학번)들은 프로필 사진 찍으랴 자기소개서 관련 수업 들으랴 정신이 없다.

수업도 빠지기 일쑤다. 수능이 임박했던 고3 막바지가 떠오른다. 주변을 보고 있노라면 취업이나 입시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SKY 대학이 상위권 수험생들의 절대 로망이라면, 취업 준비생들에겐 외국계 기업과 5대 대기업이 1차 목표다.

그 중에도 삼성이라는 시가 총액 300조 원 규모(9월 7일 기준)의 거대기업은 단연 관심 대상이다.

대개 삼성을 기준으로 취업시장이 움직이기 때문에 수험생들의 눈이 쏠릴 수밖에 없다.

또, 싸트(1차 전형)만 통과하면 면접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소위 스펙이 안 좋은 취업 준비생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자식을 둔 부모들의 만족도도 높다. 내 자식이 삼성에 들어갔다고 하면 다들 그렇게 만면에 웃음을 띤다고.

또 다른 친구 C는 삼성이 애플과 소송에서 ‘완패’하자 채용규모가 줄어드는 게 아닐까 노심초사했다. 삼성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 위로했지만 C의 걱정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다수의 언론 보도가 그랬듯, C도 미국 배심원의 편향성과 특허제도에 공분했다.

마치 삼성이 곧 대한민국이자 자신의 모든 것이듯이 말이다. K는 C가 아리송하게 느껴졌다. 그것도 잠시. 사실 K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문 기자가 꿈인 K도, 친(親) 삼성 논조의 신문사가 뽑아만 준다면 당장이라도 갈 생각이다. 월급도 다른 신문사에 비해 넉넉하다.

딱히 신문사가 무너질 걱정도 없다. 회사와 공유하는 가치가 다를 뿐이다. K는 생각한다. 일단 들어가고 보는 거지…. 수업을 듣고 K는 A, B, C와 만나 2500원짜리 한식을 먹었다. 언제나 그렇듯 취업 얘기로 꽃을 피웠다. 오매불망 삼성전자만 생각하는 C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채용 설명회에 사람 진짜 많더라. 도떼기시장이야 완전히.”
“대뜸 시중에 떠도는 루머부터 해명하던데 뭐.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그렇게 따지고 들 거면 삼성 쓰지 말라고 했잖아. 신경 꺼.”
“삼성 관련 블로그에도 그런 것 좀 있더라. 안 좋은 소문들에 대해 변을 하는 게시판이 따로 있더라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찔리니까 그런 거라니깐?”
“뭐. 싸트 점수 최상위권보다 중상위권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너무 특출하면 쉽게 떠난다나 뭐라나.”
“다 소문이야, 말 그대로 소문. 루머. 그냥 준비나 해. 이런저런 거 신경 끄고. 어쨌든 삼성에서 붙여주면 너도 땡큐 할 거잖아.”

K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애꿎은 식판만 긁어댔다. 머리 위에 별 세 개가 핑 도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삼성을 규정해야 할까. 대학생으로서, 과분하지만 한 명의 지성인이라면 지성인으로서 삼성을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까.

언제나 세상을 비판적으로 응시해야 하는 언론인을 꿈꾸는 K에겐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다.   오늘도 K는 다시, 삼성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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