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댓국 같던 어느 날의 바닐라 라떼
순댓국 같던 어느 날의 바닐라 라떼
  • 이지혜(회사원)
  • 승인 2012.09.23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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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씨(직장인)

“잔액이 부족합니다.”

출근 길 마을버스 안. 교복 차림에 키가 크고 마른 남학생이 교통카드를 찍자, 기계에서 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머리를 긁적이던 학생은 뒷걸음질을 치면서 올라온 계단을 다시 밟아 뛰어 내려간다. 기사 아저씨가 소리친다.

“야, 임마 그냥 타!”

유난히 순댓국 같던 하루였다. 안개가 자욱한데다 표정 없는 사람들이 리듬 없는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나를 포함한 거리의 모든 사람이 순댓국에 둥둥 떠다니는 순대들 같았다. 삶은 무기력해져 갔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노래 가사처럼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갔다. 삶을 채워온 많은 것들이 잊혀 갔다. 

온종일 내뱉는 말들에는 진심이 담기지 않았고, 내 마음이 담기지 않은 문장들은 타인의 벽에 부딪혀 다시 내게 돌아왔다. 사실 매일 이별하는 삶보다 더 쓸쓸한 것은 누군가를 만나도 만나지지 않는 삶이었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삶에 잔액이 부족하다고 느낀 건 마을버스 안에서 만난 고등학생 때문만은 아니었다. 삶이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던 즈음, 그 학생이 잔액이 부족한 교통카드를 들이밀었다. 그때 알았다. 내 마음에 기쁨을 충전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출퇴근을 위해 매일 걸어 다니는 명동거리가 시끄럽게 느껴진 건 이곳이 매일 걸어 다니는 집 앞 골목처럼 시시해져 버린 후였다. 명동성당 앞에서 지도를 들고 상기된 표정으로 길을 찾는다든가,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주는 외국인들 언어는 낯설었다.

마을버스 고등학생의 교통카드로 시작된 상념에 빠져있는데 어느새 회사 앞. 며칠 전 친구가 보내준 기프티콘이 생각나 회사 앞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주문을 하고 창가에 앉았다.

한철을 넘기지 못하고 간판을 바꿔다는 상점은 명동에 즐비했다. 예컨대, 빵집이 의류매장으로 의류매장이 다시 떡볶이 집으로 바뀌는 일이다. 그러나 커피숍만큼은 달랐다. 더울 땐 더워서, 추울 땐 추워서 사람들은 커피숍으로 몰려들었다.

이른 아침 7시부터 회사 앞 커피숍에는 직장인들이 항상 홀로 앉아 간단한 아침을 먹거나, 노트북을 열고 무언가를 했다. 바닐라 라떼를 기다리는데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에서 페이스북 댓글 알림이 울린다.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밀어 올린다. 3cm씩 여러 번.

얼마 전 일하면서 알게 된 현주 언니는 독일 쾰른대성당에 다녀온 후 전망대 509개의 계단을 올랐구나. 경화 언니는 어제 저녁에 운동을 한 후 비올라를 배우러 갔다 왔구나.

나는 지난밤, 300명에 가까운 내 지인들이 누구와 무엇을 했고, 무엇을 생각했는지 올려놓은 글들을 보기 위해 손가락을 화면에서 당겼다가 놓기를 반복한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저 건너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 그렇게 너와 나, 우리가 속한 삶의 이야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 말들은 허공에 쉬이 흩어졌고, 스크롤 할 때마다 글들은 저 너머로 사라졌다.

가수 박진영이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 감성, 둘 다 가질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너무 행복한 나머지 나는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끌어올리며 허무해졌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기 위해 신발을 신지 않아도 누군가의 일상을 이렇게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

이 허무함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에 낀 세대가 감수해야 할 시대적 고독이 아닐까. 바닐라 라떼가 나왔고, 한 모금을 넘기니 입안이 따뜻하고 달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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