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부추기는 사회, 이제는 법으로 바꾸자
선행학습 부추기는 사회, 이제는 법으로 바꾸자
  • 김재홍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간사
  • 승인 2012.10.12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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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당국은 최근 ‘선행학습’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달 선행학습 해소를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고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관내 중·고등학교 수학시험 문제를 전수 조사하여 해당 교육과정 범위를 넘어서거나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문제를 출제한 학교에 행정조치를 취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이다.

교육현장에서 선행학습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하기에 교육당국이 이처럼 분주한 것일까?
우리나라에 선행학습이 만연하다는 것은 통계에 분명히 나타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 6월 전국 17개 사교육 과열지역의 초중고 학생 7000여 명과 학부모 4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선행학습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평균 70.1%의 학생들이 1학기 이상 선행학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급별로 보면 초등학생은 80%, 중학생 69.8%, 고등학생은 59.8%가 선행학습을 받고 있어 어릴수록 더 많은 학생들이 진도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수학 선행학습으로 일주일에 3일 이상, 하루에 2시간 이상 공부하는 초등학생의 비율이 각각 65.9%와 53.1%에 이르는 등 선행학습으로 인한 학생들의 학습노동이 심각한 수준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선행학습 부추기는 사회
이렇게 선행학습이 만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선행학습 사교육 마케팅에 너무나 많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행학습은 사교육 시장에서 효자 상품으로 통한다. 프로그램 개발 비용이 적게 들고, 당장의 성적 향상 책임에서 자유로우며, 학생들을 장기간 묶어두기 좋고, 엘리트 학원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장점 때문에 사교육 업체들은 선행학습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고, 심지어 공영방송사인 EBS마저 선행학습 온라인 강좌를 개설해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이런 마케팅 논리를 때로는 잘 알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선행학습 상품을 계속 찾는 것이 현실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공교육을 책임지는 초·중·고교와 대학들이 선행학습을 앞장서서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해 서울·경기 사교육 과열지역의 18개 중학교 수학시험 문제를 분석한 결과 77.7%인 14개 학교가 고교 교육과정의 문제를 출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12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서울 주요 10개 대학 수리논술시험 문제를 분석한 결과 전체 문항의 절반 이상이 대학과정에서 출제됐다. 심지어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의 경우 모든 문항을 대학과정에서 출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선 학교와 대학들은 “변별력을 주기 위해선 어렵게 출제할 수밖에 없다. 기본에 충실하면 다 풀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상위권의 소수 학생들을 선별하기 위해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지나친 학습노동과 사교육비를 떠안기는 편의주의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국민 60%, “선행교육 반대”
이렇게 공교육도, 사교육도, 그리고 우리의 의식도 선행학습에 젖어 진정한 교육이 아닌 무의미한 진도경쟁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이를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지난 4월 ‘선행교육 금지법’ 제정운동을 시작하면서 공·사교육 기관이 예습수준을 넘어서 선행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전면 금지하고,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제도를 개선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2개월 반 만에 1만명의 시민들이 지지 서명을 하였고, 현재 광화문 광장에서 법률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100일 릴레이 1인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이에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7월에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67.6%가 선행교육이 문제가 있다고 응답하였고, 59.5%가 선행교육 규제에 찬성한다고 응답함으로써 국민 대다수가 선행교육의 폐해를 통감하고 규제를 원한다는 것이 수치로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선행교육, 이제는 ‘법’으로 막자
‘선행교육 금지법’ 제정운동이 시작되자 우려도 제기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선행학습 자체보다도 선행학습을 하게 만드는 구조가 문제이다.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라는 우려였다.
맞는 말이다. 교육 문제는 각 영역이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것 하나 떼어놓고 바라볼 수 없음에 동의한다.

그러나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고통이 이렇게 심각한데, 응급처치도 하지 않고 수술 방법만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늘의 고통을 풀지 못하면 내일의 고통을 풀기를 기대할 수 없다. 이제 정부와 국회는 온 국민이 신음하는 시대의 고통에 대해 확실한 대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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