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함께 돌자 서울 한바퀴-②정동
다 함께 돌자 서울 한바퀴-②정동
  • 서울타임스
  • 승인 2012.10.1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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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유산 1번지, 정동(貞洞) 두번째 이야기

정동 일대 주요 문화·예술 공간 연락처
덕수궁  02-771-9952/ 휴관 매주 월요일
중명전전시관  02-732-7524/ 휴관 매주 월요일
서울역사박물관  02-724-0274/ 휴관 매주 월요일
배재학당역사박물관  02-319-5578/ 휴관 매주 월요일, 공휴일
이화박물관  02-752-3345/  휴관 매주 일요일
구세군역사박물관 02-6364-4086/ 휴관 매주 토·일요일
덕수궁미술관  02-2022-0600/ 휴관 매주 월요일
서울시립미술관  02-2124-8800/ 휴관 매주 월요일,1월 1일
조선일보미술관  02-724-6322/
한국금융사박물관  02-738-6806/ 휴관 매주 일요일, 공휴일
공간루 정동갤러리  02-765-1883/ 휴관 없음
신한갤러리  02-722-8493/ 휴관 매주 일요일, 공휴일
정동극장 ‘미소’  02-751-1500/ 휴관 매주 월요일
정동난타전용관  02-739-8288/ 휴관 없음
한화손보 세실극장  02-736-7600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  02-777-4258

정동 지역 주요 공간 조성 연대표

 

 

 

 

 

 

 

 

 

 

 

 

 

 

 

 

 

 

 

 

 

 

 

 

 

원래 이곳에는 1886년에 조성된 관립 육영공원(育英公院)이 있었다. 1895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재판소인 평리원(平理院: 한성재판소)이 들어섰고, 1910년 대한제국 말기에는 조선총독부 조사국 분실로 사용되었다.1928년 조선총독부는 경성지방법원, 고등법원 등의 청사 확장 및 이전과 함께 법원 단지를 만들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법원청사로 사용되다가, 1995년 12월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하면서 2002년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단장되었다.
 

 

 

 

 

 

 

 

 

 

 

 

 

 

감리교 목사였던 영국인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에 의해 창시된 구세군은 1908년 10월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다. 캐나다와 미국 등지에서 모은 헌금으로 1928년 지금의 정동 구세군중앙회관을 지어 ‘구세군사관학교’로 사용하였다. 구세군사관학교는 1943년 3월 일제에 의해 폐교되었다가 1947년 다시 문을 열었다. 1959년 선교 50주년을 맞이해 증축 공사를 벌였는데, 이때 ‘구세군중앙회관’으로 불렀다. 구세군자선남비가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28년 12월이다.
 

 

 

 

 

 

 

 

 

 

 

 

 

 

 

덕수궁 안에 있는 현대식 건물인 석조전 서관으로1938년 건립됐다. 1998년 12월에 창경궁(昌慶宮) 박물관에 있던 미술품을 옮겨 와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이다. 소장품들은 대부분 1908년 이후 수집한 것으로 고려 때의 출토품·삼국 및 통일 신라의 불상·조선의 서화·토속품·공예품 등이 있다. 근대미술전문기관으로 자리매김했으며 근대미술관련 기획전과 근대미술 관련 조사·연구·출판, 시민을 위한 미술강좌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930년대 당시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신축된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외벽은 중국 상하이에서 가져온 붉은 벽돌로 쌓았다고 한다. 대한제국 말기에 세무총사현재의 관세청 사옥으로 쓰였고, 독일인 외교고문 묄렌도르프의 사무실도 이곳에 있었다. 1963년 신아일보사에 매각된 뒤, 1975년 지금과 같은 4층 건물로 증축되었다. 1980년 10월 언론통폐합으로 경향신문에 흡수되기 전까지 신아일보사 별관으로 사용되었다. 1층에는 신아일보를 기념하는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부민관(府民館)’은 일제 강점기인 1935년 경성부(京城府)가 세운 부립(府立) 극장이다. ‘경성 부민관(京城府民館)’으로도 불렸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탑 건물이다. 본래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위패를 봉안한 덕안궁이 있던 곳이다. 일제 말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동원 예술과 정치집회 장소로 변질됐다. 1945년 7월 조문기, 유만수, 강윤국 등 대한애국청년단 주도하에 ‘부민관의거’가 행해진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8·15 해방 뒤 이곳에서 열린 제헌국회에서 초대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며, 1954년 6월 제3대 국회부터 국회의사당 건물로 쓰였다. 1966년 9월 있었던 국회의원 김두환에 의한 ‘국회오물투척사건’으로도 유명했다. 1991년부터 서울시의회 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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