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토론으로 주체 의견 표출해야
자유로운 토론으로 주체 의견 표출해야
  • 권종현 우신중학교 교사
  • 승인 2012.10.19 16: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권종현 우신중 교사

예전엔 전국의 학교가 비슷한 방식으로 학급회의를 진행하였다. 학교에서 정해준 ‘주훈(週訓)’의 범위 내에서 ‘실천사항’을 결정하는 것이 항상 우선이었다. 당시의 ‘주훈’이란 대개 학생의 의무를 규정한 것이었고 학급회의는 주어진 의무를 자율이란 이름으로 세탁해주는 절차에 불과했다.

건의 사항과 기타 토의 시간이 있었지만 활발한 건의와 토의가 이루어진 기억은 별로 없다. 지혜로운(?) 학생은 말해봤자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간혹 지혜롭지 못한 친구가 두발규제나 복장 검사의 부당성을 얘기하거나, 예산이 필요한 사항을 건의하거나, 학교나 선생님들의 관행에 문제제기라도 하면 ‘선생님의 말씀’ 순서 때 애먹기가 일쑤였다.

지금은 위와 같은 학급회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어떤 혁신학교에서는 전교생이 둥글게 모여앉아 자유롭게 학칙을 정하기도 한다. 재치있는 제안으로 활기있는 회의를 진행하며 민주주의를 배우기도 한다. 수업도 주어진 선택지에서 정답을 찾는 방식보다는 자유롭게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조정하는 방식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교는 아직도 민주주의의 학습장이 아니다. 여전히 순응을 미덕으로 삼는 권위주의의 장이다. 교육에서의 자율, 자치, 인권의 필요성에 대한 흔한 반론이 있다. 책임과 의무가 우선되지 않는 자율과 자치는 무질서와 방종을 낳고, 선량한 다수가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수긍할 만한 말이다. 학교에서 수많은 아이들의 무책임한 행동을 보노라면 우리에겐 자율과 자치가 성급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무질서를 제어할 물리적 조건과 문화적 환경이 미흡한 상태에선 인권의 보장이 방종을 부추기는 것 같은 착시도 생긴다.

그러나 무질서와 무책임은 자율과 자치 역량의 결핍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인권에 바탕한 자율과 자치 역량을 키우지 않는다면 책임과 의무에 바탕한 질서와 조화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책임과 의무 능력을 기른 후에 자유와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도 없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표현할 기회가 주어질 때 민주적 소양과 함께 책임감도 길러진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선거는 지도자를 결정하는 것과 동시에 시민들이 다양한 요구를 표출해 합의해가는 과정이다. 서울은 대통령 선거뿐 아니라 교육감 선거도 함께 치러야하기에 그 어느 때보다 교육 문제에 관한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와야 한다. 그래야 좋은 정책을 만들고 좋은 후보를 뽑을 수 있다.

하지만 선거 공학적 관심은 흘러넘쳐도 교육 주체들의 자유로운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교육 주체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국가들은 만18세까지 투표권을 준다. 심지어는 16세까지 주는데 반해 우리는 만19세 이상에게만 준다.

고등학생은 미숙한 것이 아니라 판단할 기회를 박탈당했기에 판단을 안할 뿐이다. 교육 정책의 가장 큰 당사자인 학생이 자신들의 요구를 갖고 자유롭게 상상하며 정책제안을 하는 것만큼 좋은 논리·논술 학습, 민주주의 학습은 없다. 

학생과 교사에게 물리는 재갈은 우리 정치 문화를 후진적 수준에 머물게 한다. 수년 전에 월 1만 원의 정치후원금을 냈던 사실을 들추어내 2000명에 가까운 교사들이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교육의 당사자인 교원노조나 교원단체가 교육감 선거에 일체 관여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런 정치 문화와 제도 속에서 어찌 활발한 정책의 생산이 가능할 것이며, 학생들에게 민주적 소양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정권의 부당한 간섭과 횡포로부터 교육을 보호하고자 하는 조항이다. 그러나 지금은 교사와 학생의 기본권을 박탈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학생과 교사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학생들의 투표권과 정치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고,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을 억압하는 사람들. 투표시간 연장으로 국민의 참정권을 확대하자는 요구조차 묵살하는 사람들. 판단력 미숙, 자치 역량 부족, 무질서, 비용 증가 등 구차한 변명은 마시라.

시민들의 정치참여 확대로 잃을 것이 많아 두렵다고 솔직히 고백하시라. 자신들은 여전히 ‘주훈’을 결정하고 싶고, 시민들은 그에 따른 ‘실천사항’을 정해 순응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시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