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많아져버린 어느 일요일
생각만 많아져버린 어느 일요일
  • 김성은 동국대학교일반대학원
  • 승인 2012.10.26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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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오래된 영화들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몹쓸 버릇을 고칠 방도가 없다는 거다. 에잇! 지나간 영화 몇 편 본다고 일요일이 어찌 되기야 하겠어?! 결국 오늘도 추억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책 장안에서 골라낸 첫 번째 영화는 <피아니스트>였다. 이 영화가 개봉하던 당시 친구는 꼭 같이 보러가자고 나를 한참을 꼬드겼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해 겨울 대여점에서 빌려봤다. 그 때의 내 소감은 정확하게 “뭐야, 이게!”였다.

진주만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에만 익숙해져 있던 17살의 나에게 생존을 위해서 몸부림치는 한 남자의 인생을 담은 영화는 너무 어려웠던 탓이다. 나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찔한 추격신과 쫄깃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할리우드 액션영화로 돌아갔다. 그렇게 한 2년쯤을 할리우드 액션영화에 몰두하던 무렵 우연히 <글루미 선데이>를 보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의 어느 가을 독일 사업가가 헝가리의 작은 레스토랑을 찾아와 노래 한곡을 요청한다. 그리고 영화는 60년 전 과거로 돌아갔다. 매력적인 피아니스트가 불쑥 찾아든 레스토랑은 한동안 성황을 이뤘다. 여기까진 전형적인 멜로 영화 같았다. 하지만 이 영화도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은 탓에 달콤한 멜로도 여기까지였다.

어느 날 찾아들은 독일 손님은 비극을 몰고 온다. 그리고 이 영화는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물론 해피엔딩에 대한 기대가 보기 좋게 무너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처연한 슬픔을 품고서 흐르는 멜로디 위에 달콤하게 녹아드는 사라브라이트만의 글루미 선데이는 마치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아, 그래. 이처럼 평온한 죽음이 어디 있을까. 이토록 편안하게 죽는다면…. 위험한 상상이 잠시 스치기도 했다.

그런데 퍼뜩 애드리안 브로디의 슬픈 눈빛이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가족들을 컨테이너 열차에 태워 보내고서 자신도 그렇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혼자 남은 사람의 슬픔이 뒤엉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그 눈빛이 나를 다시 현실로 돌려놓았다. 그래, 삶이 죽음으로 바뀌는 순간은 이렇게 찰나에 이루어지는 것이구나.

그제야 <피아니스트>가 다시 보였다. 그리곤 매년 가을이면 이 영화를 꺼내서본다. 영화 후반부에 애드리안 브로디가 독일군을 만났을 때의 긴장감과 두려움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이해 할 수 없는 감정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일요일 오후를 영화 한편에 빠져 고스란히 흘려보냈다.

올해도. 이렇게 영화는 누군가의 인생에서 커다란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번 가을에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세 편의 영화들은 모두 사법체계를 대신해 피해자들이 직접 복수를 한다는 내용을 주제로 한 영화라고 한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한 영화평론가는 “사회악에 대한 법적 응징이 미흡하다고 느끼는 대중이 인과응보, 사필귀정이 이뤄지는 영화의 판타지에 열광하는 것”이라고 했다. 에이, 설마하면서도 이 문장이 온전히 이해가 되는 것은 나도 어느 정도 공감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그 당시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는 가장 충실한 매체라고 불리는 만큼 복수극이 유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쓸쓸한 기분이 자꾸 밀려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판타지의 세계를 꿈꾸러 들어간 극장에서 현실을 마주하고 또 다시 상처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까.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의 결말이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영화도 마지막에 이르렀다. 마침내 나치에게서 해방되는 유태인들의 얼굴에는 환희가 가득하다. 벌써 몇 번째 이 영화를 다시 보는 나도 그제야 마음이 편해진다.

독일군이 패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건만 왠지 영화 속 해피엔딩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슨 심보인걸까. 그런데 이 영화를 만든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인생은 좀 황당하다. 성추행 혐의로 30년을 도망자로 살았다고 한다. 심지어 2003년 피아니스트가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할 때도 체포당할 것이 두려워 시상식에는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체포를 당한 것도 2009년 취리히 영화제에 공로상을 받으러 가던 길이었다. 1년 뒤 가택 연금에서 풀려난 로만폴란스키 감독은 벌써 4편의 영화를 제작했다.(물론 아직 인터폴에는 수배자로 올라있다.)

로만폴란스키 감독은 피아니스트를 제작하는 내내 도망자였다. 애드리안 브로디가 표현해 냈던 독일군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은 경찰에 체포당할까 두려워하던 그의 마음이 녹아들었던 것이 아닐까. 갑자기 영화 속의 모든 장면들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정말 사필귀정, 인과응보는 영화 속 결말로만 존재하는 것일까. 영화와 함께 얽혀들은 이 질문과 함께 일요일 오후가 저물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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