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떨어진 서울학생인권조례와 두발 규제
땅에 떨어진 서울학생인권조례와 두발 규제
  • 서울타임스
  • 승인 2012.11.0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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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이 지난 1월 공포한 서울학생인권조례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
서울학생인권조례는 ‘학교장과 교직원은 학생의 의사에 반하여 복장, 두발 등 용모에 대해 규제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이 조례를 지키는 서울시내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각각 12.2%, 11.1%에 불과했다.

나머지 90%에 가까운 중고교가 학생인권조례를 무시하고 머리카락의 색깔이나 길이, 모양 등을 규제한다고 밝혔다. 당초 서울학생인권조례에서 두발 규제를 하지 못하도록 한 이유는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용모는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가꿔야 한다. 이 문제까지 학교 당국이 가위를 들고 나서는 일은 인권의 싹을 자르는 것과 같다.

서울시내 학교들의 두발 규제 사실은 교육과학기술부의 조사를 통해 알려졌다.
교과부는 지난 4월 개정된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일선 학교들이 두발과 복장 규제, 소지품 검사 등을 학교규칙으로 정하고 있는지 이달 말까지 파악해 달라고 17개 시도교육청에 요청한 바 있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은 교과부가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기 위해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과부는 곽노현 전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하고 일선 학교에 학칙을 개정하라고 지시하자, 즉각 조례 무효 소송을 내고 장관 권한으로 교육감 지시를 정지시켰다.

이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 학생과 학부모, 교원의 의견을 들어 두발 등에 관한 사항을 학칙에 기재하도록 했다. 일선 학교들은 시교육청과 교과부의 틈바구니에 끼어 눈치를 보다 결국 두발 규제 쪽으로 기울었다. 이런 과정에는 보수 학부모 단체 등의 압력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서울의 일선학교 대다수가 학생인권조례를 내려놓고 교과부의 압력에 순응한 셈이다. 이를 두고 현재 서울시교육감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이대영 부교육감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는 교과부가 지난달 8월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학칙이 제·개정됐는지 파악하라는 공문을 보내자 그대로 일선 학교에 하달했다.

인권조례를 제정하고 공포까지 한 교육청으로서 이같은 교과부의 공문에 토씨 하나 달지 읺고 일선학교에 내려 보낸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권한대행 스스로 교육청의 자율적 감독권을 포기하고 교과부에 순응하는 자세를 보인 셈이다. 이러한 교육청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일선학교로서는 관치교육의 관행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교육은 통제보다 자율과 창의성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통제가 심한 집체교육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이러한 폐습을 고치고 학생들 스스로 인권의 가치를 깨닫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두발 규제는 군사정권 시절인 70~80년대 모든 학생의 인권을 짓밟은 대표적인 사례다. 등교할 때마다 교문에서 생활주임 교사와 선도부 학생들이 복장과 두발을 점검하고 서습없이 머리카락에 가위질을 했다. 이는 유신정권 당시 일반인들에 대한 장발단속과 치마길이 단속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 망령이 서울시내 일선학교에서 되풀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이같은 교육의 퇴행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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