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크루소의 행복을 믿지 않아!
로빈슨크루소의 행복을 믿지 않아!
  • 이승희
  • 승인 2012.11.02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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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의 관심사 중 하나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일도 바쁘고 자식 성적에 유난떠는 일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은 데다, 자기 인생은 자기 것이라는 평소 철학을 핑계 삼아 딸에게 수험생 뒷바라지도 거의 하지 않고 공부 간섭도 하지 않았다. 

시험이 코앞인데 딸이 본인 공부가 덜 된 탓을 우리 부부에게 돌린다. 다른 집은 수험생을 두면 가족들이 TV 시청도 하지 않고 손님 초대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데 우리 집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며 개그맨 말투와 몸짓까지 흉내 낸다.

한 동네에 사는 친척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온갖 고민을 나누고, 주말에는 엄마, 아빠 지인들이 와서 이야기판, 술판을 벌여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에 질세라 반박에 나선다. 친구들에게 성격 좋다는 평가를 받으며 최고의 고민상대가 된 것도 이런 환경의 힘이고, 비싼 족집게 과외 없이도 웬만한 논술솜씨를 가지게 된 것 또한 손님들과의 대화에서 주워들은 얘기가 많아서라고 말이다. 약간의 미안함도 표하지 않는 내게 ‘어이 상실’이라며 눈을 흘기고 제 방으로 들어간다.

요즘은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는 일류대학에 가야하니 공부에만 집중하라고 요구한다. 대학에 가면 좋은 친구는 더 많이 생길 것이고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도 훨씬 수월하고 다양해질 것이니 미루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입시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는 데 필요한 훈련만을 받은 아이들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시작하고 서로의 생각을 발전적으로 주고받으며 행복해질 수  있을까?  

관련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인 미국인들은 한 해에 9만 달러만 벌 수 있다면 ‘모든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돈과 행복 사이의 상관성은 복잡하지만 사회적인 유대와 행복 사이의 상관성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인간관계가 깊으면 깊을수록 사람들은 더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인간관계가 거미줄처럼 촘촘하고 잘 조율된 조건에서 자란 아이는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를 시작하는지 잘 알게 된다고 한다.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오가는 신호가 무슨 뜻인지 잘 파악한다. 따라서 세상을 반갑고 유쾌한 곳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과의 좋은 유대관계가 삶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건강과 행복에 직결된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우리 얘들을 행복과 성취로 이끄는 것은 명문대의 졸업장도 일류 직장도 아닌, ‘단단하고 긴밀한 사회적 관계’와 ‘동지애’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다른 행복공식에 집착하고 있다.

다른 이들이야 어떻든, 우리 부부는 ‘스펙을 위한 로빈슨 크루소’로 두지 않고 ‘어울림 환경’을 계속 고집하려 한다. 우리도 즐겁지만, 무엇보다 우리 딸이 행복해지는 확실한 기본조건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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