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팔선과 사오정을 뚫고 오늘도 뛴다!”
“삼팔선과 사오정을 뚫고 오늘도 뛴다!”
  • 서영길 기자
  • 승인 2010.05.02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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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에 만난 서울 직장인 3인

‘삼팔선(38세 조기퇴직)’,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 요즘 대한민국 직장인들을 빗댄 말들이다. 구조조정의 칼바람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가장, 남편, 아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그들을 만나봤다.

“사오정의 불안감 … 직장생활에 후회는 없어요
- 중소기업 중역 김동주씨

▲ "능동적일 때 일도 즐겁고 여유도 더 생깁니다. " - 김동주씨 ⓒ서영길

직장생활 17년차의 김동주씨(45). 그는 강남에 있는 한 중소기업의 중역을 맡고 있고, 1남 1녀를 둔 가장이다.

“직장생활을 잘 하고, 못 하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어요. 지금껏 직장생활을 하면서 얻은 철학은 수동적일 때보다 능동적일 때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고, 그만큼 여유도 더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항상 긍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한다는 김씨지만, 그에게도 불안감은 있다.

“회사에 중역으로 있다 보니 역할과 위치에 대해 늘 고민이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전문지식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거든요. 요즘 사오정이란 말도 있듯 제 나이대의 직장인들에겐 모두 불안감이 있죠. 그럴 때면 일에 회의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이들’과 ‘가정’을 생각하면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뿐이란다. 노후 준비, 중학생인 두 자녀 사교육비, 집안 대소사 등 챙겨야 할 가정사도 많아 골치가 아프지만 ‘이런 게 인생이지’라고 생각한단다.

“나이가 들어선지 집에 들어가면 가족과 대화하기보다 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정도로 감성이 메말랐어요. 반복되는 일상이 짜증스럽기도 하고요. 그런데 얘기 꺼내고 보니 아내와 애들한테 미안하네요”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는 김씨는, “지금껏 내가 하는 일에 후회는 없었어요. 은퇴하면 강아지도 키우면서 시인처럼 살고 싶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일회성 일자리 갖고는 실업문제 해결 안 됩니다”
- 공공기관 선임연구원 김준석씨

▲ "직장은 자아실현의 장. 초심을 잃지 않아야..." - 김준석씨 ⓒ서영길

직장생활과 결혼생활 모두 11년차인 김준석씨(39). 그는 서울 광화문의 한 공공기관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초년생 때 전공을 살린 일을 할 수 있다는 데 제 직장에 자부심이 있었어요. 직장은 자아실현의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심을 잃게 되고, 직장생활이 생계수단으로 변질되고 말죠.”

김씨는 나이가 들면서 승진 때문에 고민이란다.

“4~50대 직장인들을 보면 승진 문제, 아내와 자식과의 대화 단절, 가정에서의 소외감 같은 고민들이 있다는데, 저도 슬슬 이런 문제들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김준석씨의 일은 여러 기업들을 대상으로 생산성 향상 컨설팅과 교육이다. 그는 자기에게 교육받은 직장인들이 다시 찾아줄 때에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또래 직장인들을 만나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어서 좋단다. 그러면서 요즘 사회문제인 청년실업과 중년실업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청년인턴제로 실업률만 줄이려는 것은 실효성이 없어요. 대기업보다 중소‧벤처기업에 세제혜택 같은 것을 주어 살려야죠. 그래야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을 가도 좋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어요. 또 중년 실업률도 창업지원을 해주던지 경력관리를 통한 취업연계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어요. 일회성 자리만 많이 만들어 실업률을 낮추는 것은 소용없습니다.”

“이공계 기술자에 대한 사회 인식과 대우에 불만”
- 전기설비 엔지니어 유진환씨

▲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 - 유진환 ⓒ서영길

전기설비 엔지니어로 일하는 유진환씨(35). 그는 결혼 3년차의 새내기 가장이다. 얼마 전 2세를 얻어 가장으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며 웃는 그에게 직장은 어떤 의미일까?

“결혼 전 제게 직장이란 돈을 벌기 위한 수단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고 보니 내가 다니는 직장에 애착이 가고 제게 맡겨진 일을 책임있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직장에 다니며 스트레스도 많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일한다는 유씨. 그에게도 직장생할에서 힘든 점은 고용불안이다.

“회사에서 인원감축, 상사들 명퇴 소식 얘기가 들릴 때면 언젠가 나도 대상이 되겠구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생겨요.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이 힘을 빼놓죠.”

그는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 사태’를 보면서 정말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몇십 년 동안 몸담은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야 할 사람들과 회사를 살리려고 동료들에게 해고를 지시한 경영진들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왜 저런 지경까지 갈 수밖에 없었고, 또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는, 아직은 자신의 일에 만족하지 않는단다.

“아직은 제 일에 만족하지는 않아요. 조금 더 일을 해야겠죠. 하지만 기술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에는 불만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에 비해 이공계 기술자들을 대우해 주지 않아요. 그래 가지고는 그 사회의 미래는 없다고 봅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모든 가장들이 힘냈으면 좋겠어요”라며 파이팅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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