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자원, 융합의 관점
인적자원, 융합의 관점
  • 우선희 서울기독대학 강사·헤드헌터
  • 승인 2012.11.11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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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희 서울기독대학강사·헤드헌터

근래에 이른바 융합(convergence)이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간 각 분야의 분리주의가 우리의 삶을 지배해왔고 이제 그 한계를 자주 만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융합주의와 분리주의에 있어서 무엇이 더 위에 있거나 더 옳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세상을 당분간 우월적으로 지배해온 서양문명의 합리성이 헬레니즘에 경도된 바 없지 않고, 헬레니즘에 이어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등 각 파가 출현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에, 헬레니즘으로부터의 분할 전통과 논리가 자연스럽게 오늘에 이르게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우리 각 개인의 존재는 개별 세포로 이루어져있고, 동시에 유기체로 서로서로 영향을 미칩니다. 생물적 현상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영역, 인지적인 영역이 협력하면서 고유한 한 지체로 완성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융통성 있게 연결되어 자아가 됩니다.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장에 피가 나기도 하는데 생물적인 플랫폼은, 정서적이며 인지적인 지렛대가 어떻게 역동하느냐를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분리한 하나하나를 파악하고 그것을 전문 영역이라 보는 사람들에게는 설명이 부족한 몇 프로가 남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음식 레시피의 경우에, 분리주의 사람들은 종(種)으로까지 나눌 수 있는 재료를 거명하며 중량이 몇 그램, 시간이 얼마 등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음식이 탄생하기까지에는 나의 상상력, 나의 기대감이 반영되고, 어떤 때에는 내 손맛을 좋아하는 가족의 요구까지 반영됩니다. 이것에 그치지 않고 조리 과정 중의 즐거움, 식사 후의 피드백이나 시장 상황마저도 의사결정과 생산에 관련된 것이므로, 이것을 계량화 하여 하나하나 분리하고 그 합을 전체라 보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뿐만 아니라, 모두가 같지만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존재와 방식의 고유성으로 인해 한계를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융합에 있어 부분의 합은 예민하게 출렁입니다. 분리주의자들처럼 1+1=2와 같은 매트릭스가 아니라, 2에 못 미칠 수도 있고, 혹은 훨씬 능가하거나 많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반 분야의 융합과정은 과정자체가 매우 중요하고 품질이 좋아야 합니다.

개인이나 조직이 성장해 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융합의 관점으로 보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배경, 학벌, 자격증으로 말하던 스펙은, 변화무쌍하고 경쟁이 치열한 이 세상에서 이제 순진하게 방어적인 병기로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좀 별로라고 생각하던 어떤 속성이, 목표하는 결과에 더 큰 기여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이너스가 플러스가 되기도 합니다.

시간을 많이 쓰면서도 가시적인 직접 생산요소로 설명하기 어렵고 재무제표의 자산에 기록되지도 못하는 양보, 예의, 반성, 생기발랄, 진득함, 협조의 속성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역동하여, 결론적으로는 전체를 더욱 가치 있게 합니다.

한 국가내의 학문, 산업, 과학, 기술,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재고할 관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전부터 있어 왔는데도 마치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새삼스러운 우리 자신의 발견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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