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보단 고교서열화 심화시킨 자율형사립고
‘자율’보단 고교서열화 심화시킨 자율형사립고
  • 한정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 승인 2012.11.1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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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문재인 대선 후보는 ‘고교서열화 해소’와 ‘공교육 정상화’의 한 방안으로 외국어고와 자율형사립고를 단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애초 자율형사립고는 기존의 입시 명문고와는 차별화된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펼쳐낼 거라는 기대로 도입됐으나 그와는 달리 오히려 고교서열화만 심화시켰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편 안철수 후보의 경우에도 외국어고 등의 학생선발권을 폐지해 ‘고교평준화’를 이루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처럼 고교서열화 해소, 공교육 정상화 등을 기치로 하는 구체적인 공약들이 대선 후보들에 의해 발표되는 중인데도 자율형사립고는 추가로 생길 예정이다. 삼성은 2014년 충남 아산에 은성고를 설립한다.

포스코는 그 이듬해인 2015년에 인천 송도에 설립할 목표를 가지고 있다. 삼성의 경우에는 임직원 자녀 70%, 충남지역 학생 10%, 사회배려대상자 20%를 선발할 계획이고, 포스코는 임직원 자녀 30%, 인천지역 학생 50%, 사회배려대상자 20% 선발을 논의 중이라 한다.

한쪽에서는 대선 공약으로 자율형사립고의 폐지를 주장하는데, 정부에서는 기업과 함께 추가 도입을 추진하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자사고 ‘귀족학교’ 비아냥

자율형사립고 도입과 확대는 2007년 당시 한나라당의 핵심 교육 공약 가운데 하나였다. 이에 이명박 정부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추진해 2011년에 100개교까지 늘릴 생각이었다. 자율형사립고 정책은 사립학교에 더 많은 자율권을 인정해 설립목적에 부합하고 다양한 학생·학부모의 요구를 수렴함으로써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차별화된 교육은커녕 입시 명문이 되기 위한 몰입 교육에 더 박차를 가하고 높은 등록금을 받는 등의 운영 태도로 ‘귀족학교’란 비아냥을 들어야했다. 거센 비난 여론뿐만 아니라 신입생 모집에서도 어려움을 겪어 더 확대되지 못하고 2013년에 49개 학교가 운영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서울 지역의 동양고와 용문고는 대규모 정원미달 사태를 겪으며 일반고로 전환됐다.

성적 상위권 자사고로 쏠려

무엇보다도 자율형사립고 정책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자율형사립고와 일반고 간의 ‘학력격차’ 때문이다. 자율형사립고는 중학교 내신성적 상위 50% 안에 드는 학생들의 지원을 받아 추첨으로 뽑는다. 따라서 일반고와의 학력격차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유기홍 국회의원실과 함께 국정감사 요청자료와 기존의 연구 자료들을 가지고 ‘최상위권은 특목고, 상위권은 자율형사립고, 중하위권은 일반고’가 아니냐는 우려를 숫자로 확인했다.

중학교 내신성적이 상위 20%안에 드는 신입생 비율이 자율형사립고에서는 49.7%이고, 일반고에서는 18.1%이다. 반면 중학교 내신성적이 하위 50%인 신입생 비율은 자율형사립고에서는 5.1%, 일반고에서는 50.7%이다.

다시 말해 상대적으로 성적이 상위권 학생들은 자율형사립고로 쏠리고, 중하위권 학생들은 일반고로 쏠렸다. 이런 현상은 고교체제 안에 성적을 기준으로 하는 서열화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자율형사립고 정책이 고교서열화를 심화시켰다는 방증이다.

학력격차 이외에도 진학동기, 부모의 학력 그리고 직업과 소득, 중식지원률, 전반적인 학교 만족도, 사교육/방과후학교 참여 현황, 교육과정 운영 실태 등 종합적으로 자율형사립고와 일반고를 비교한 결과 정책 도입 당시에 내세웠던 기대와는 상당히 다른 결과를 확인했다.

그동안 정부는 자율성을 바탕으로 교육의 다양성, 이른바 수평적 다양성 확대를 내세웠다. 하지만 실상은 수직적 다양성, 곧 서열화만 뚜렷해졌다.

자율형사립고 정책이 3년차를 맞았다. 올해는 자율형사립고와 함께 고교 생활을 시작한 학생이 처음으로 대입시를 치르는 해이다. 따라서 적극적인 재검토를 한 해 두 해 미루게 되면 자율형사립고는 입시명문고라는 추진력을 얻어 더 빠르게 곁길로 달리게 될 것이고, 고교서열화는 더 강화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곁길로 빠져도 너무 빠진 자율형사립고의 질주를 막고, 전반적으로 고교체제를 바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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