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룡 ‘마포관광정보센터’ 봉사자
김석룡 ‘마포관광정보센터’ 봉사자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2.11.16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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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도 전문적으로 해야 나눔의 기쁨 커진답니다”

당신이 시중은행에서 30년 근속한 뒤 정년퇴임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열심히 일한 보상으로 편안한 여생을 보낸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지하철 9호선 홍대입구역 지하에서 15일 문을 연 ‘마포관광정보센터’의 외국인 안내 자원봉사자로 나선 김석룡 씨(송파구 신천동)와 같은 이들이다.

은행 간부 출신의 아름다운 퇴직 생활

김 봉사자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인도네시아어를 전공한 뒤 외무고시를 준비하다 당시 조흥은행에 입사했다. 2004년 은행 통폐합 후 2009년 12월 신한은행 본사에서 조사역으로 정년퇴임하기까지 30년 동안 근속했다.

그는 “자원봉사를 하면 얼마나 받느냐? 보상도 없는 일을 왜 하느냐는 지인들의 말을 들을 때가 가장 싫다”고 했다.

대가 없는 일을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지인들과 반대로, 김 봉사자는 살림살이가 넉넉하면서도 끝없이 욕심을 부리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김 봉사자는 “모두 자신의 일에 대가를 원한다면 나눔이 필요한 이웃에게 누가 도움을 주겠냐”며 안타까워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아주 넉넉한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란 것도 아니다. 평택에서 태어나 경기도의 변방, 연천군 신서면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다. 신서면은 군사 분계선의 북측 대남 방송이 생생하게 들리는 경기도의 오지 중 한 곳이다.

고등학교는 서울 영등포공고로 진학했다. 공업입국 구호가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적성에 맞지 않았다. 고3 때 담임교사가 영어를 잘하니 외국어대를 가라고 권했다. 전공도 나중에 꼭 필요하다며 인도네시아어를 추천했다.

당시 담임교사의 얘기는 적중했다. 현재 동남아시아어 전공자가 부족해 삼성 등 대기업에서 안달하고 있다. 하지만 김 봉사자는 정년퇴임 후에야 대학시절 전공을 다시 살리게 됐다. 자원봉사자로서 크게 늘어난 동남아시아 출신 근로자와 관광객을 돕는 일이다.

관광 안내도 어설프면 국제적 망신

그는 이미 안산시를 오가며 외국인 근로자를 돕고 있다. 또 은행 선배와의 인연으로 사단법인 사회연대은행 전문위원으로 ‘일해주고’ 있다. 그것도 부족해 서울시 자원봉사센터의 재능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를 본 마포구청에서 연락이 와 ‘마포관광정보센터’에 나가게 됐다. 일주일에 3일, 하루 3~4시간 씩 홍대입구역 부스에서 외국인 관광객, 특히 동남아에서 온 관광객을 안내하게 된다.

김 봉사자는 “관광정보센터에는 수요일과 금요일, 일요일만 나가게 되지만 홍대 지역을 배우기 위해 연말까지는 매일 나가볼 생각”이라고 했다. 직접 홍대 앞 분위기를 익히고 외국인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다.

그는 “관광안내도 어설프게 해서는 망신만 당한다”며 “웬만한 외국인 관광객들은 인터넷 등으로 방문할 지역의 정보를 꿰고 있기 때문에 그보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봉사자는 정년퇴임 직후 무얼할까 궁리하다 한국관광공사의 관광통역안내사 모집 공고를 보자마자 달려가 지원했다. 관광통역사 양성 학원에도 등록했고 인도네시아어와 영어, 학창시절 웬만큼 구사했던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다시 공부했다. 관광법도 필수과목이었다. 2011년 결국 관광통역사 자격증을 따냈다.

김 봉사자는 “거실은 언제든 들춰볼 수 있는 전문서적으로 가득하다”며 “로스쿨 다니는 아들과 직장에 다니면서도 자기 공부에 열중인 딸까지 모두 면학분위기”라고 털어놓았다.
그의 이런 공부는 더 이상 ‘입신양명용’이 아니다.

체계적 자원봉사 시스템 부재 아쉬워

그는 “재능기부는 절대 비즈니스용으로 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며 “그런데도 남는 것 없는 일 뭐하러 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화가 나는 것”이라고 했다.

막상 자원봉사자로 일하다보니 한계도 많이 느낀다. 우리나라의 자원봉사 시스템이 한참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어른이 할 봉사와 청소년들이 할 봉사의 구분’으로 정리했다.

어느 정도 전문지식을 가진 어른이 해야 할 일이 있고 봉사정신만으로 나서는 청소년이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마저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봉사자는 “아직 자원봉사자 자원이 부족한데다 전문적인 관리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나마 서울시 자원봉사센터가 봉사자에 대한 인적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 지속적으로 관리할 뿐 다른 지방정부나 단체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한다.

안산시에서의 외국인 근로자를 돕는 일에서도 그랬고 서울 당산동 외국인근로자센터에서의 강화도 나들이 프로그램 지원에서도 그랬다. 여러 명이 몰려나온 학생들은 정해진 시간을 마치고 자원봉사 확인증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는 “정작 공장에서 손이 잘리고 다리를 다친 외국인 근로자에게 필요한 산업재해 관련 법률 상담을 할 수 있는 봉사자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 봉사자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아직 내가 사회적으로 쓸모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고마워할 뿐”이라며 “주위를 둘러보면 말없이 나눔을 실천하는 시민들이 많아 큰 힘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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