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성과 생명력 읊는 설치작가 최재은
시간성과 생명력 읊는 설치작가 최재은
  • 정민희
  • 승인 2012.11.1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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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Myriad of Things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하루하루 찬란한 원색의 향연을 펼쳤던 단풍이 가을비와 거센 바람에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는 한 계절의 끝이다. 어떠한 물감으로도 채색이 어려울 듯한 아름다움과 함께 쓸쓸함으로 한해의 결실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독일을 거점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최재은 작가는 ‘하늘’을 주제로 시간의 무한한 흐름과 유한성을 지각한다. 그는 은유적인 조형작업을 들고 5년만의 국내 개인전으로 찾아왔다.

그의 시선은 삶의 순환에 대해 일관성을 갖는다. 다양한 매체의 조합으로 ‘완성’ 단계 수준의 설치작가로 살아온 30여년 시간의 겹이 관람객을 엄숙하게 빠져들게 한다.

국제갤러리 신관 1층 출입구 커튼 틈으로 전시장에 들어서면 캄캄한 밤하늘의 바다로 빠지게 된다. 내 한 몸이 오롯이 우주공간에 떠있듯이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 Verse_Puglia, Italy, 2012 이미지제공.국제갤러리
<Finitude>라는 제목으로 독일의 스토르코프(Storkow) 밤 하늘을 해질 무렵부터 새벽녘까지 약 8시간 촬영한 기록물이다. 세 개의 영상이 세 면에 각각 미세한 움직임으로 별, 구름, 공기 등을 보여준다.

자세히 보면 퇴화한 감각을 일깨워주기까지 한다. 고요한 시간의 흐름 가운데 작가의 발자국 소리가 다가오다 다시 멀어진다. 이는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자의 발걸음, 또는 방랑자가 밤하늘에서 느끼는 숭고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반면 2층 다른 공간은 일출하는 태양으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칠흑 같은 밤하늘의 숭고함에서 새벽으로 가는 일출의 풍경을 이태리 Puglia지역에서 110분 동안 1분 간격으로 촬영한 사진 중 50점이다.

어둠의 상징, 죽음의 공간에서 생명으로, 다시 탄생의 공간으로 전환되며 우주 속에서의 반복과 회귀를 통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순환’을 드러낸다.

1986년부터 <월드 언더그라운드 프로젝트 World Underground Project>를 통해 여러 겹의 종이를 세계 각 유적지에 수년간 묻은 후 꺼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는 서로 다른 장소의 문화와 역사를 결정해준 대지에서의 ‘시간의 지층’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재은은 현대미술의 다양한 매체의 실험성을 농축해 삶과 자연의 관계, 공간에 대한 독특한 조형적 언어를 창조했다. 한국인 최초로 일본 ‘하라미술관’(2010)뿐만 아니라 제46회 베니스 비엔날레(1995)에 일본 대표로 참여한 바 있다.

한국에는 해인사 성철스님 사리탑 <선의 공간>과 삼성의료원 <시간의 방향> 등의 환경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 최재은<오래된 詩>. ~11월 22일까지. 국제갤러리 2관(K2). 02)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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