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혼인강좌 수강생이라며 전화가 온다. 온전히 그의 마음을 들어주기 위해 집에 도착해 주차하고 차 안에서 통화를 했다.
처음에는 배우자 집안과의 종교 차이로 갈등을 겪는가 싶었는데 듣다 보니 부모님의 이혼으로 뿌리 깊은 상처 속에서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깊은 아픔이 있었다.
요즘엔 참으로 아픈 가정이 많다. 한창 이혼이 늘어가면서 상처 많은 가정 안에서 자란 젊은이들이 이제 결혼을 하게 될 때가 되었나 보다. 상담이 들어와서 보면 많은 경우 가정은 상처로 얼룩져 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란 이 젊은이는 그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을 털어놓고 있었고, 그 또한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말을, 듣고 있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너무나 귀중하고 사랑스런 존재에요. 그리고 당신도 괜찮지 않고 나도 괜찮지 않지만 우리 모두는 다 괜찮아요. 슬펐다고 괴롭다고, 힘들다고 이야기해도 괜찮아요.”
미국의 정신과 의사 스캇 펙이 이야기한 것처럼 정말 당신도 괜찮지 않고 나도 괜찮지 않지만 우린 모두 괜찮다. 괜찮을 수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들고 자기 스스로를 똑바로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면, 아이들을 재운 뒤에 밤늦게라도 함께 만나자고 나는 말했다.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난 뜻이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너무나 크고 아름다운 무엇인가가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집에 돌아가니 남편은 아이들을 모두 재워 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안은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난 흔적들로 가득했다.
종이벽돌 블록들과 책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온통 마루에 펼쳐져 있었다. 하나하나 제자리로 놓으면서 문득,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신나게 놀았던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이런 행복한 아이들의 흔적을 치울 수 있다는 것이 그런 신나는 생명들이 내게 맡겨졌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했다.
내가 기쁘게 허리를 숙여 물건들을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이, 내 근육을 움직여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이 순간 기쁘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했다!
모두 다 제자리에 놓고 나서 이제는 매년 참석하는 2박 3일의 부부학교를 위해 가방을 꾸려야 했 다. 잠시 아이들을 돌보아 주실 부모님 덕분에 주말 동안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니! 감사하다.
필요 없게 된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내 생각이 나서 보낸다고 하며 오랜만에 연락하는 친구들에게도 감사하다. 나는 그들을 얼마나 생각하고 지냈을까? 직접 만나지 않아도 SNS에서 나의 글을 보며 문득 내 생각을 했다고 내게 필요할 것 같아 보내준다고 하는 그들이 참으로 고마웠다.
상담을 했던 그 젊은이와 가족들과 친구들….
참으로 소중한 존재인 그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떠올리며 잠을 청한다. 그들 각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길 빌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