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사랑과 닮은꼴
소통, 사랑과 닮은꼴
  • 우선희 서울기독대학 강사·헤드헌터
  • 승인 2012.11.2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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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희 서울기독대학강사·헤드헌터

정치․경제․사회는 물론이고 가족관계와 친구간의 친밀감에 있어서도 ‘소통’이 그 자체로 중대하게 여겨지며 혹은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으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소통은 막힘없이 잘 통하는 것으로 우리에게는 의사소통을 이릅니다. 반드시 둘 이상의 소통 당사자가 있기 마련이고 기본적으로는 쌍방향의 상호 역동입니다. 사랑과 흡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소통에서 양대 산맥은 청취 영역과 발화 영역이라 하겠습니다. 오늘은 청취 영역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들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온통 앞 다투어 말하려는 사람이 많아져서 말이지요.

자녀의 학예회에 참석하는 부모님을 봅시다. 다른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행사이지만 ‘나는 너를 사랑하여, 네 활동이 자랑스럽고 소중해’하고 표현하기 위해, 중요한 회의를 하다가도 달려갑니다.

혹 연애 중인 파트너가 과외의 활동을 하고 있다면, 여러분도 아마 그렇게 정성을 쏟아 그(그녀)를 알아줌으로써 비중 있는 나의 일부임을 표현할 것입니다. 청취되지 못하면 서운하여 소원해집니다.

주의 깊게 청취하는 경청은 단순히 사전적의 뜻을 나누기 보다는 행간의 숨은 의미, 비언어적인 메시지 혹은 전체 정황을 파악하는 모든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을 훨씬 더 잘 알게 되어 나의 표현도 훨씬 풍부하고 설득력이 있게 됩니다. 무작정 집요하게 따라 붙는 스토킹과 성스러운 연애 감정이 구분되는 것과도 흡사합니다.

존중하며 듣다보니 상대방의 처지와 마음을 더 잘 알게 되고, 알아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능동적으로 알아준 표시를 하면 상대방의 마음에도 그가 존중받고 아껴지고 있음이 입력됩니다.

청취함에 있어 으쓱한 마음은 금물(禁物)입니다. 상담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내담자가 한 말에 대해 ‘네, 그러셨군요.’라고 반응하는 훈련을 받습니다. 어설프게 잘 파악도 못하면서 매뉴얼의 ‘그러셨군요’ 표현을 한 미숙한 상담자가 우스꽝스러운 피드백을 받기도 합니다. 안하느니만 못한 우쭐함은 시급히 버려야 됩니다.

통화를 할 때조차도 반듯한 마음과 바른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기업 현장에서의 장면이라면, 고객은 보이지 않는 전화선을 통해서 우리가 발을 꼬고 앉아서 통화를 하는지 팔을 괴고 있는지를 다 보고 있으며 마음의 상태까지 전달받으니까요.

듣기, 청취하기, 경청하기. 일상적이면서 특별하고 매일반인 것 같은데 예민합니다. 여러분이 연애를 하면 상대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엄청나게 자발적인 노력을 하시지요?

사회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경청한 후에 그것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알아주는 능동적인 표현을 함으로써 서서히 로맨스가 이루어지듯, 사회 속에서의 소통의 과정도 그런 노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서로서로가 도와주며 서로에게 필요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소통’이 수반됩니다. 연애를 하듯 노력하고 겸손하게 말랑말랑해 보십시오. 성장이라는 로맨스가 서서히 열리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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