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사람을 도구로 대했을까?
나는 다른 사람을 도구로 대했을까?
  • 송송이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
  • 승인 2012.12.07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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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송이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혼인강좌 강사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아이들을 재우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이런,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깨워준 남편에게 감사하며 일단 오늘까지 마감인 원고를 써서 보내고, 내 영혼을 돌보기 위해 간만에 걸어서 새벽에 성당에 다녀왔다.

내 몸 안에 밥이 되어 들어오신 그 분을 생각하며 걸어오는 길이 참으로 뿌듯하다. 늦지 않게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행사장으로 출근하여 준비하고 발표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무사히 행사를 시작했다.

행사 사회를 볼 일이 자꾸 생기니, 관심이 없었지만 메이크업을 배워볼까 생각하게 된다. 세미나장에서 발표를 하는 사이, 진행자인 나는 잠시 나와 넓은 홀에서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그 홀에서 일반 참가자 중 한 명이 오늘 행사 순서에 대해 질문을 한다.

나는 친절하게 대답을 하고 있는데 이 사내가 음수대의 물을 마시려고 손을 뻗는 척하면서 내 몸을 건드렸다. 나는 들고 있던 커피를 손에 살짝 쏟고 말았다. 이런, 나쁜 놈 같으니라고! 지금 뭐하시는 거냐고 한마디 하고 다시 사회를 보러 들어가야 하기에 다른 남자 동료를 불러와 그 사람들을 비어 있는 방에서 내보내라고 요청했다.

행사 사회를 그렇게 많이 봤지만, 이렇게 성추행을 당한 적은 처음이었다. 현장에서 당장 잡아서 쫓아내지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다른 어린 후배나 인턴이 당했으면 어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사람이 없는 넓은 장소에서는 타인과 손을 뻗어 닿지 않는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과 이상한 사람들을 구분해 내기 위해 세미나 참가자들에게 모두 명찰을 달아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회생활 12년에 아이 둘 낳은 맷집 센 아기 엄마를 못 알아보고 들이댄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문제와 상처와 병이 있길래 이랬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마지막 즈음, 내가 그래도 예쁘긴 예뻤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예쁜 연예인들은 얼마나 공공연하게 수모를 겪으며 보이는 곳이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들게 매 순간을 견디어 내고 있을까? 문득, 세상살이에 지쳐 자신의 삶을 끊어버린 연예인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자신을 도구로 대한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자존감에 수많은 상처를 입고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닐까…!

“타인은 또 다른 나”라고 했으니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든 그 사람도 또 다른 나일 것이다. 내가 혹시 다른 이를 도구로 대하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성찰해 본다. 성적으로뿐 아니라 어쩌면 사람을 기능인으로 대한 것도 도구로 대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나를 아프게 했지만 누군가의 귀여운 아기였을 그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이유가 온전히 실현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가 다른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지 않기를! 그 역시 다른 이들의 도구가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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