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STORY-이야기꾼이 어떻게 사상가로 변모 하는가
BOOK STORY-이야기꾼이 어떻게 사상가로 변모 하는가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2.12.08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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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주년을 맞은 작가 황석영(69) 씨가 자전적 장편 <여울물 소리>를 펴냈다.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인터넷에 연재하면서 이미 수많은 독자와 만난 작품이다. 50년 동안 소설을 써온 작가가 지난 세월을 되짚어 본다는 점부터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황씨는 1962년 <사상계>에 단편 ‘입석부근’을 발표하며 약관의 나이에 소설가로 등단했다. 1970년대 초 월남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 ‘탑’과 개발독재의 뒷길에 밀린 젊은이들의 여정을 그린 ‘삼포 가는 길’ 등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평양방문에 따른 투옥생활을 거치면서 그의 작품은 사회적 현상과 우리민족의 역사적 실체에 한 발 더 다가선다. 출옥 후 발표한 <오래된 정원>을 시작으로 <손님>, <심청>, <바리데기> 등에 과거와 잇닿은 ‘오늘’을 사는 한국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황씨는 문단에서 ‘황구라’라는 별호를 붙였을 정도로 걸직한 입담을 자랑한다. 그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이야기꾼의 면모는 여실히 드러난다.

<여울물 소리>는 외세와 신문물이 들이닥치던 구한말 이야기꾼 이신통을 통해 동학, 증산도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동학과 증산도는 자생적 근대화의 지향이라는 공통분모로 우리 민족의 근대화 의지를 보여준 사상이었다. 당시는 조선민중의 자생적 근대화에 대한 역량이 제국주의 외세의 개입으로 좌절되는 시대였다.

황씨는 이 시대를 살아내는 이야기꾼을 통해 자신만의 담론을 펼쳐낸다.
소설은 ‘당시의 이야기꾼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작중 화자는 시골양반과 기생 첩 사이의 서녀인 연옥이다.

주인공인 이신통 역시 중인의 서얼이다. 이신통은 조선후기 직업적인 낭독가인 전기수에서 강담사, 재담꾼, 광대물주, 연희 대본가로 살아간다. 이후 천지도에 입도해 혁명에 참가하고 교주의 사상과 행적을 기록하는 역할을 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작가는 이야기꾼이 동학, 증산도 등의 ‘혁명사상가’가 돼 갈 때, 어떻게 변화의 길을 찾을 수 있었을까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현재를 살고 있는 자신의 고뇌와 맞닿은 지점이다. 

황씨는 “이야기꾼 이야기를 쓰겠다고 작정하고, 처음에는 19세기쯤에 갖다 놓고 그냥 허황한 민담조의 서사를 쓰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우리네 그맘때의 현실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면서 “올해는 대선까지 있어서 더욱 실감할 수 있지만, 돌이켜보면 근대적 상처의 잔재가 지금도 우리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여울물 소리>는 내년 중국, 프랑스에도 출간될 예정이다. 1만5000원, 자음과 모음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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