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공동체 ‘품애’ 배인용·변민숙 씨
마을공동체 ‘품애’ 배인용·변민숙 씨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2.12.14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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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있는 것을 잇는’ 공동체 만드는 부창부수

지난 7, 8일 종로구는 경기도 가평에서 시각장애인 가족캠프 ‘행복한 다섯 손가락’을 진행했다. 이 캠프는 종로구 효자동 일원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마을공동체 ‘품애’와 종로장애인복지관이 주관한 행사였다.

특히 마을공동체 ‘품애’는 지난 2009년부터 ‘행복한 다섯 손가락’을 기획, 종로구 신교동의 국립서울맹학교의 시각장애인과 가족, 그리고 마을 주민들에게 따뜻한 정(情)의 가교를 이어줬다.

‘품애’는 서울시가 올해 대대적인 마을공동체 복원사업계획을 내놓기 이전부터 실질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품애’의 의미는 가슴을 뜻하는 ‘품’과 사랑 ‘애(愛)’의 합성어다.

공방 많은 효자동에서 첫 프로젝트

처음 공동체의 기초를 쌓고 운영해온 이는 배인용 이사와 변민숙 서울예비사회적기업 대표이사. 이들은 일찌감치 마을공동체 일에 ‘부창부수(夫唱婦隨)’의 화음을 조율해온 부부지간이다.

배 이사는 인터뷰를 위한 약속 장소로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품애’ 사무실 대신 통인시장 인근의 비누공예 공방 ‘리즈 소프(Riz Soap)’ 앞을 정했다. 배 이사는 얼마 후 영하의 날씨 속에 작은 스쿠터를 나타났다.

알고 보니 비누공예 공방이 바로 변 대표가 일하는 곳이었다. 공방 안에 셋이 둘러앉자 두 평 남짓한 공방이 꽉 찼다.

배 이사는 “효자동과 통인동, 옥인동이 있는 이 지역 골목에는 조선시대 전통이 살아있다”며 “공동체의 첫 걸음도 2009년 시작한 효자동 프로젝트였다”고 말문을 열었다.

효자동 프로젝트는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 강한 정체성을 가진 효자동 일대의 구심점을 만들기 위해 시작했다. 출발 당시의 작은 ‘지역운동’은 이후 수많은 갈래로 분화되며 커다란 나무와 같이 키를 높여나가기 시작했다.

배 이사는 “우리 공동체의 가장 큰 특징은 여러 프로젝트별로 각기 다른 길을 간다는 점”이라며 “프로젝트는 ‘무엇’을 해야겠다는 목적을 먼저 세운 뒤 추진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의욕에서 출발한다”며 “하나의 프로젝트가 만들어지면 관련 분야에 힘이 될 수 있는 단체나 주민들이 참여하게 되고 지속적인 사업으로 자리잡게 된다”고 했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프로젝트가 현재 10개에 이른다.

자발적 참여로 만든 10개 프로젝트

가장 먼저 시작한 ‘효자동 프로젝트’를 비롯, 주민의 결혼식이나 어르신 회갑연부터 마을의 명절잔치 등을 진행하는 ‘착한 잔치 프로젝트’, 여러 공방의 연대를 이루는 ‘웃대 프로젝트’, 미혼모의 아기 돌잔치를 치러주는 ‘아기엄마 프로젝트’, 낡은 주택을 보수하고 환경에너지와 마을 텃밭 등을 조성하는 ‘다음세대 프로젝트’ 등이 있다.

또 예술가들이 지역에 벽화를 그려주는 ‘문화놀이 프로젝트’와 소통의 기술을 공유하는 ‘컨센서스 프로젝트’, 일하는 엄마들을 위한 공동육아와 마을학교 사업인 ‘방방프로젝트’,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하는 ‘多가치 프로젝트’, 끝으로 IT영역의 재미있는 기획을 모아 나누는 ‘아○○ 프로젝트’도 있다.

‘품애’의 특징은 이들 10개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앞으로 20~30개 프로젝트로 더 확대될 수 있는 ‘열림’에서 찾을 수 있다.

배 이사는 “우리 공동체의 슬로건이 ‘있는 것을 잇는, 다른 것을 품는 마을 사람들’인 만큼, 인위적인 조직을 만드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주민들이 참여하는 방식을 따른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다른 것을 품는 마을 사람들’도 ‘품애’만 가진 포용성을 드러낸다.

배 이사는 “효자동과 인근에는 청와대가 가깝기 때문에 30여개의 시민단체가 있는데다 통인시장 상인회 등 직능단체, 70년대부터 자리잡아온 종로구의 지원단체들도 많다”며 “배타적일수도 있는 이들 단체가 다 함께 하나의 프로젝트나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품애’의 역할”이라고 했다.

‘품애’가 독자적인 단체에 머물지 않고 지역의 수많은 단체 사이를 이어주는 허브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통인시장을 중심으로 한 ‘장터’ 행사의 경우 상인들은 물론, 지역의 단체들이 진보와 보수의 색깔을 벗고 모두 참여해 큰 마당을 펼치기도 했다.

여름밤 마을 평상에 모여든 주민들

변 대표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옛날 시골 마을 평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던 세상”이라며 “효자동 일대는 주민들의 정주의식이 강한 만큼 배타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허물고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꿈을 하나씩 이루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와 올 여름 진행한 마을 영화제 ‘한여름 밤의 꿈’에서 그런 평상에 모인 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한여름 밤의 꿈’은 인근에 사는 심재명 명필름 대표이사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최신작을 상영, 많은 주민들이 무료 영화를 보며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가 됐다.

변 대표는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와 국립 서울농학교, 마을 교회 등에서 진행한 영화제는 주민들이 눕거나 엎드려 영화를 보며 지역의 문화행사를 마음껏 즐기는 기회였다”며 “이런 행사 하나하나가 모두 이 지역 주민들이 가진 능력의 기부를 받아 이루어진다”고 했다.

변 대표와 배 이사 부부는 요즘 그동안 자신의 자산을 아낌없이 공동체에 내어준 주민들에게 어떤 보답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또 헌신적으로 일하는 활동가들의 안정적인 생활도 책임져야 한다. 때문에 ‘품애’는 기부와 찬조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만드는데 주력한다. 예비사회적기업을 설립한 것도 이러한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라고 한다.

배 이사는 “사실 지난 3년 동안 마을공동체 일을 하면서 집도 내놓게 됐고 잃은 게 적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서울의 유서깊은 동네에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일에서 더 큰 보상을 얻기 때문에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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