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진의 유리알 세정]
탈세는 인류가 국가라는 단위를 만들고 세금을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있었을 것이다. 세금을 납부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에 세금을 회피하고자 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세금 자체의 의의는 국가의 존재의의와 같은 것이다. 고대국가에서 전쟁은 패자의 백성이 전부 승자의 노예가 되거나 승자에게 학살되는 등의 결과를 낳았는데, 노예가 되는 것보다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 공동체 입장에서는 합리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사회가 도래하기 전에는, 세금은 대개 귀족이나 부자들보다 일반시민들에게 중과되기 일쑤였고, 형식적으로는 평등하더라도 능력과 무관하게 부과됐다. 그 대표적인 것이 많은 국가에서 오랜 기간 채용했던 인두세이다.
청나라 강희제가 인두세를 동결하고 ‘성세자생정’(盛世滋生丁)이라는 별도 호적대장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신규 등록하는 인구를 여기에 등재하고 인두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하자 인구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실제 인구가 늘어나기도 했겠지만 미등록 인구가 등록된 것이 큰 이유였을 것이다. 지금 기준에서 보면 세금 안 내려고 자식의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인데 능력과 무관하게 인두세를 부과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초래됐던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우에는 인두세 같은 세제는 존립하기 어렵다. 돈이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 모두 동일한 세금을 낸다는 것은 평등과 공평, 사회정의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는 거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 반대에 부딪쳐 온 재산 중과세
한동안은 소비세가 가장 공평한 세제로 여겨졌다. 토마스 홉스 같은 이는 소비세가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하다고 했는데,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상당기간 동안 이런 믿음이 받아 들여졌다.
재산에 부과하는 세금 또한 역사가 오래지만 재산을 많이 보유한 사람들이 대개 귀족이나 사회 유력 계층이기 때문에 재산에 대한 중과세는 역사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려웠다.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에 대한 격렬한 반발을 보더라도 재산에 중과세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종부세의 위헌 결정과 약화를 볼 때 동원된 논리라고 하는 것이 그 정당함 혹은 부당함을 떠나 권위주의 시절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언사가 아니었다.
종부세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세금이라던가, 부자에게 고통을 주는 세금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정부관계자들이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서 재산에 대한 과세가 얼마나 지난한지가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종부세의 전신인 종합토지세와 토지공개념에 의한 각종 부담금이 제정된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지금과 다른 특수한 상황이 재산가들의 반발을 억눌렀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물품에 소비세를 부과하는 것은 상당한 행정력을 요하는 일이다. 부가가치세(이하 부가세)가 도입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부가세 탈세를 전문적으로 하는 자료상과 같은 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것을 보면 일반적인 소비세가 정착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대개 특정물품에 소비세가 부과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그러한 물품이 생활필수품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 경우에 시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고 탈세의 유혹 또한 매우 컸다.
예를 들어 소금과 같은 물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원성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혁명의 일 원인도 생활필수품에 과중한 세금을 부담시키는 것이 원인이 되었고, 지금은 당연시 여겨지지만 19세기 유럽의 노동자들은 맥주에 세금을 부과하는 법을 대표적인 악법으로 생각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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