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킹(book+ing) 순례
부킹(book+ing) 순례
  • 김진웅 선문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
  • 승인 2013.02.0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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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웅 선문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

가끔 여유시간이 주어지면 나만의 ‘순례(巡禮)’를 하곤 한다. 책방 순례이다. 새책방 보다는 주로 헌책방, 중고책방이 나의 단골 순례지이다. 이런 습관은 오래전 유학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보통 풀리지 않는 주제로 머리가 아프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는 훌쩍 집을 벗어나곤 한다.

집을 나서기 전에 몇 가지를 준비한다. 즉 만 원권 지폐 몇 장으로 지갑을 채운다. 어깨걸이 배낭을 찾아 놓는다. 그리고 되도록 간편한 복장을 갖춘다.

책방순례는 늘 설레는 마음이 앞선다. 새 책방에 가는 것과는 달리, 어떤 특정 책을 사려는 마음 또는 목표는 없다.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어느 책방으로 갈 것인가를 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오늘은 어떤 책들과 만나게 될 것인가 기대감에 들뜨게 된다. '부킹(book+ing)'의 설렘이다.

순례길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수동적 교통수단의 이용은 일상생활에서 곤두섰던 신경을 무디게 이완시키고, 산책을 나가듯 편안한 마음이 들게 한다. 또 많이 걷게 되어 그날은 별도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오는 차안에서는 호기심을 채워주는 책의 즐거움에 빠질수 있다.           

단골 순례지는 보통 정해져 있다. 책방 리스트를 입수해 한 두 번씩 둘러보고 나니, 나에게 맞는 책방들이 점차 정해졌다. 헌책방 정보는 <모든 책은 헌책이다>의 저자 최종규의 덕분이다.

‘함께 살기’를 주창하는 그는 헌책방 문화를 전파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대략 10여 군데가 단골 순례지로 꼽히는데, 이 중에서도 나는 오프라인으로만 만날 수 있는 책방을 좋아한다.

그곳은 오랜 전통을 간직한 성지이자, 주인은 책과 함께 한 역사의 산증인이다. 보통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지만, 서로 훈훈하고 따스한 가슴으로 소통하곤 한다.

순례시간은 보통 두 시간에서 네 시간 정도, 길어야 반나절을 넘기지 않는다. 하루 중에서도 오전에는 일을 보고 오후부터 저녁시간에 순례를 하곤 한다. 이 시간이면 한?두  군데 책방을 돌아볼 수 있다.  

보통 헌책방은 비좁지만 전 분야의 책이 망라되어 있다. 따라서 자연히 다양한 책들을 접할 수 있다. 덕분에 헌책방 순례가 시작된 이후, 나의 지적 편식은 많이 사라졌다.

특히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신세계’를 발견하는 순간은 순례의 절정에 속한다. 마치 널리 알려진 고전(古典)처럼 나만의 ‘고전’을 스스로 발굴하는 재미는 중독성이 있다.  

내발로 손수 보물을 찾는 희열은 절대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그림의 떡이 아니라, 직접 맛보고 소유할 수 있다.

책을 소유하고픈 욕망이 큰 나에게는 내 세상을 꾸밀 수 있는 헌책방 순례길이 늘 즐겁다. 때론 과욕으로 구입한 책들도 많아 다시 방출하고 싶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미지의 책세계에 대한 선구안(選球眼)도 생기게 되었다. 순례의 마무리는 책을 깨끗이 손질하는 과정이다.

대개 다른 누군가 소유했다가 내놓은 물건인지라 종종 묵은 흔적들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먼지와 때를 벗기면 책 본래의 얼굴이 드러난다. 밤에는 그와 마주하는 시간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그날은 늘 밤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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