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마을은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마을은 어디로 갔을까?’
  • 이주원 (주)두꺼비하우징 대표
  • 승인 2013.02.0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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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서 ‘마을, 그리고 집’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물음은 이곳 서울시에서 마을공동체 사업이 가능한가라는 질문과 이어진다.

이 물음에 답변하기 전에 먼저 서울이라는 도시의 성장사를 대략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는 한국전쟁으로 철저히 파괴된 도시였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서울시 19만 동의 일반주택 중 3만4742동이 완전 소실 또는 파괴되었으며, 반쯤 소실되거나 파괴된 것이 2만340동에 달했다.

폐허가 된 서울시를 재생하는 과정은 정상적일 수가 없었다. 따라서 서울은 긴급하게 도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압축적인 ‘응급형 도시’로 건설되기 시작한다.

더구나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연간 현재 경주시 인구만큼의 인구수가 증가하여 만성적인 주택난을 겪게 된다. 한 때 판자촌에 거주하는 서울시민들이 13%까지 육박했다는 것은 이런 만성적인 주택난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은 장기적인 도시계획의 안목도, 여유도 없이 압축성장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압축 성장은 아파트 위주의 개성 없고 단조로운 도시환경과 경관을 만들었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도시가 되어버렸다.

그럼, 그 많던 마을은 어디로 갔을까? 한국전쟁으로 서울이 철저하게 파괴된 뒤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했던 마을이 철거와 재개발로 깨져나간 것은 ‘부동산 불패의 신앙’ 때문이었다. 정부가 조장하고 투기세력이 휩쓸고 다니면서 ‘마을’은 하나 둘씩 소멸되어 갔다.

마을의 소멸은 장소성과 역사성의 소멸됨을 의미한다.

또한 마을의 소멸은 획일화된 도시경관으로의 탈바꿈을 의미함으로 도시의 주택 및 건축물의 생태적 다양성조차 멸종시킨다. 물론 기존 주민들을 해체시켜 이주하게끔 하기 때문에 커뮤니티의 소멸 또한 폭력적으로 이루어진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서울의 그 많던 마을들이 이렇게 사라진 것이다.

비록 뉴타운사업이라는 광풍에 휩쓸리기는 했지만 도시기능의 정상화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는 지속적으로 서울시 행정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게 된다. 시민들의 압력 결과 마을공동체 사업이 서울시의 핵심 정책 사업으로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서울시 도시행정은 시민들의 도시 정상화를 요구한 압력에 조응해 ‘마을의 재발견’을 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 정책을 비전으로 제시한 것이다. 

박원순 시장 취임 이래 전임 시장들의 개발정책(뉴타운, 한강르네상스)으로 잊혀졌던 ‘마을’이 다시 조명 받고 있다. 서울시의 시정에 ‘마을’이라는 시민들의 생활공간이 중심에 놓였다는 것은 공공성의 회복을 향한 패러다임의 대전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마을 만들기 사업의 정답은 없다. 마을마다 각각의 다른 환경과 여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마다 입지와 환경, 인구구성, 경제수준, 공동체 문화 등이 상이하다.

따라서 마을을 복원하고 되살리려면 마을이 처해 있는 특성에 맞게 사람과 재정과, 행정이 어울려져야 한다.

‘마을(공동체)’은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있는 장소를 말한다. ‘만들기’는 사람간의 소통을 이어주는 것을 뜻한다. 우리에게 이웃이 사라진 지는 오래 되었다.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이웃에 도둑이 들어도 자신에게 피해가 없으면 외면한다.

우리나라는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정이 많았다. 상부상조의 미덕이 있었다. 마을에는 어른이 있었고, 질서가 있었다. 그런 마을을 회복하는 것이 ‘마을 만들기 사업’의 목적이라는 사실을 함께 공유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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