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함께 돌자 서울 한바퀴 (19) 여의도
다함께 돌자 서울 한바퀴 (19) 여의도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3.02.22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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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금융의 본산… 모래밭 위 비행장터에 일군 서울 현대화의 상징
▲ [포털 다음 지도 갈무리]

여의도는 섬 아닌 섬이다.

한강은 압구정동과 옥수동 사이를 지나며 서남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바꾼 뒤 동작대교 아래서부터 북서쪽으로 다시 휘돌아간다. 방향을 바꾼 한강은 노량진에서 양화대교 못미친 곳까지 작은 샛강길을 냈다.

한강 본류와 샛강이 만들어낸 섬이 바로 여의도다. 당초 여의도는 밤섬과 이어진 하나의 하중도(河中島)였다. 1960년대 말 밤섬을 폭파해 얻은 골재로 제방(윤중제)을 쌓으면서 두 개의 섬으로 나뉘었다.

▲ 여의도 비행장.
여의도는 서울의 개발사(開發史)를 상징한다. 모래섬이었던 이곳은 1916년 일제가 비행장을 만든 뒤 1971년까지 프로펠러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 비행장을 철거하기 전인 1968년부터 시작된 한강종합개발 공사로 여의도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 건축중인 국회의사당.(1973.5.)
앞서 1967년 김종필 당시 국회의장(공화당)이 여의도를 국회의사당 신축부지로 발표했고 1975년 준공했다.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 대한민국 국회의 여의도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여의도는 한국 정치의 본산인 동시에 한국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가 들어서면서 금융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또 한국방송공사와 문화방송 본사가 세워져 지상파방송의 본산이 됐다.

여의도는 지금도 서울에서 가장 바쁜 곳인 동시에 전국적 이슈를 내보내는 정치·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맡고 있다.

○군사정권 합리화 ‘광장’에서 시민공원으로

▲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1970년대와 전두환 전 대통령 정권 초기인 1980년대 초까지 5·16광장으로 부르던 지금의 여의도공원에서 매년 10월 1일 국군의 날 군사력을 시위하는 육해공군과 학도호국단, 향토예비군의 분열과 사열이 벌어졌다.
지난 1970~1980년대 대한민국 국군의 일부 부대는 매년 9월과 1, 2월이 가장 바빴다. 9월은 5·16광장(현 여의도공원)에서 10월 1일 벌어지는 ‘국군의 날’ 행사 준비, 1월부터는 한미연합훈련(Team Spirit) 훈련 준비 때문이었다.

‘국군의 날’ 행사 동원부대는 한 달여 전부터 여의도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며 아스팔트로 포장된 5·16광장에서 끊임없는 분열과 사열을 거듭했다.

당시 도보로 분열과 사열을 하는 부대원들은 전투화 뒷 굽을 수차례 갈아 끼워야 했고 행사 직전 전원 A급 전투화를 수령했다.

당시 ‘국군의 날’ 행사에는 보병뿐만 아니라 기갑, 포병, 해·공군은 물론 예비군, 한때는 학도호국단이란 이름으로 교련복을 입은 남녀고교생까지 동원됐다. 여의도 일대는 이들 행사 부대를 지원하는 병참, 취사, 의무부대까지 주둔했다.

1972년 약 39만6000㎡(12만평) 규모로 만든 5·16광장은 100만 명을 수용하는 국내 최대의 광장이자 군사정권의 아이콘이었다.

▲ 북한의 남침 땅굴 규탄 시민권기대회(여의도광장 1978.10)
박정희 정권은 광장을 통한 권력 우상화 효과를 얻는 동시에 5·16 군사 쿠테타를 합리화하는 정권의 성지(聖地)였다. 이후 1979년 12·12사태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 폭압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듬해 5·16 광장에서 ‘국풍81’을 개최, 국민들의 저항을 순화시키고자 했다.

당시 ‘잊혀진 계절’이란 노래로 대상을 따내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가수 이용은 대중적 인기와 별개로 대학생들로부터는 철저히 배척되기도 했다.

▲ 이산가족찾기.
1983년은 KBS에서 진행한 남북이산가족 찾기로 여의도 광장이 세계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가족을 찾아 방송국을 찾은 전국의 월남 이산가족들은 광장 한쪽에서 노숙을 불사하며 애타게 헤어진 부모, 형제 소식을 기다렸다.

▲ 추위가 누그러진 지난 12일 여의도공원을 찾은 학생들이 농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후 5·16광장은 여의도광장으로 이름을 바꾼 뒤 1997년부터 공원화사업을 추진, 1999년 1월 ‘한국 전통의 숲’, ‘잔디마당’, ‘문화의 마당’, ‘자연생태의 숲’ 등 4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여의도공원을 개장했다. 지금 여의도공원에서 농구를 하거나 지난해 12월 ‘솔로대첩’ 구경에 나선 젊은 시민들은 과거 5·16광장의 블랙코미디를 알지 못한다.

 

 

 

 

 

 

 

○주인이라는 국민이 모르는 그들만의 통로

▲ 박근혜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식을 앞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연단 준비가 한창인 가운데 대형 태극기와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습니다'란 취임식 슬로건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대한민국 국회는 국민들에게 개방돼 있다. 아무 때나 들어가 정원에서 바람을 쐴 수 있다. 국회도서관에도 들어가 책이나 자료를 볼 수도 있다.

의원회관 식당이나 휴게시설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의원회관의 본관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방문하고자 하는 의원실과 연락을 한 뒤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증을 가슴에 달아야 한다.

▲ 1976년 국회의사당 모습.
의원회관의 각 의원실은 당선 횟수(선수·選)數)에 따라 위치가 달라진다. 만나고자 하는 의원이 초선이라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구불구불 한참 걸어야 한다.

의원회관은 생각보다 옹색하다. 의원실은 25평 남짓. 문을 열자마자 보좌관과 비서관들의 책상이 놓였고 각종 자료가 어지럽게 쌓여 있다. 보좌관 책상을 지나 문을 열면 의원실이다.

하지만 지난해 국회는 1900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제2의원회관을 세우고 고참 의원 위주로 입주를 마쳤다. 제2의원회관 의원실은 45평이다. 기존 의원회관도 두 개의 의원실을 하나로 합치면서 50평 가까이로 커졌다. 여기 쓴 보수비만 477억 원이다. 도합 2377억 원이 들어갔다.

운이 좋다면 의원과 함께 의원회관에서 국회 본관까지 지하통로를 걸어볼 수 있다. 국회에서 회기가 진행 중일 때도 의원회관과 본관을 오가는 의원이나 보좌관을 볼 수 없다. 모두 지하통로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국회 지하통로는 1984년 국회도서관을 신축하면서 함께 만들었다. 본관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의원회관과 통하고 왼쪽은 국회도서관과 이어진다. 통로의 전체 길이는 460m. 양탄자와 비숫한 붉은색 우레탄 매트가 길게 이어져 걸음이 가볍다.

통로 양쪽에는 여러 사진과 서예작품, 명화 등이 걸려있다. 한마디로 고급스럽다. 이 통로는 의원과 동행하지 않는다면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다. 

치열한 노력 끝에 공천을 받고 다시 수개월의 선거전을 통해 등원한 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보다 이 지하통로를 걸을 때 더 뿌듯한 성취감을 느낀다고 한다.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는, 볼 수도 없는 ‘특권’의 복도가 국회 지하통로다.

국민이 주인인 국회, 국민에게 열려 있는 국회가 감추고 있는 공간이다. 국회의원들은 맑은 날에도 국민 눈에 띄지 않는 지하통로를 통해서만 본회의장을 드나든다.

○밤섬 살 깎아 쌓은 제방따라 피고 지는 꽃

▲ 지난해 9월 영등포구 여의도동 밤섬에서 마포구청과 밤섬보존회 주관으로 진행된 '2012 밤섬 실향민 고향방문행사'에 1960년대 한강 개발과 여의도 건설로 밤섬을 떠났던 실향 주민과 가족들이 추석을 앞두고 고향인 밤섬에 입도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은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시작된다. 봉 감독은 괴물 영화들의 관습적 문법을 따르지 않고 영화 도입부부터 한강에서 한강시민공원으로 기어올라와 시민들을 공격하는 괴물을 풀샷(Full Shot)으로 잡았다.

이 장면은 한강시민공원에 익숙한 서울시민들에게 더 큰 충격이었다. 과장된 허구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 극적인 리얼리티를 부여한 셈이다. 영화 ‘괴물’ 이후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은 시민들에게 더 친숙해졌다.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은 한강철교중앙부터 국회뒤샛강 사면지까지 20리 길은 8.4km나 이어진다. 시민들이 많이 찾는 구간은 여의나루역에서 곧바로 갈 수 있는 원효대교 남단에서 마포대교를 거처 서강대교 남단 사이다. 또 마포대교와 서강대교 사이에는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밤섬이 있다.

밤섬은 1980년대까지 서울의 낚시꾼들이 보트를 타고 건너가 붕어의 입질을 기다리던 곳이다. 기록에 따르면 1967년까지 62세대가 밤섬에서 고기잡이와 조선, 뽕나무·약초(감초) 재배나 염소 방목 등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 지난해 4월 여의도동 여의서로에서 시민들이 벚꽃을 구경하며 봄기운을 만끽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후 한강개발에 따라 마포구 창전동으로 집단 이주됐다. 밤섬은 현재 철새도래지로 여의도 순복음교회 앞 한강변에 철새를 조망하기 위한 한강조망대가 있다.

밤섬은 한강종합개발 당시 폭파돼 섬의 일부만 남은 상태다. 폭파로 얻은 골재는 여의도를 감아 도는 제방이 됐다. 이 제방길은 잘 알려진 윤중로와 여의동로다.

▲ 지난해 10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린 2012 서울세계불꽃축제의 화려한 불꽃이 가을 하늘을 수놓고 있다.
서강대교 남단에서 국회의사당 뒤를 돌아 여의2교 북단까지 이어지는 1.7km는 매년 4월 벚꽃축제가 열리는 윤중로다. 공식명칭은 ‘여의서로’로써 마포대교 남단에서 원효대교 남단을 지나 여의도동 19-1번지 서울교 북단에 이르는 3.8km의 ‘여의동로’와 함께 여의도를 한 바퀴 도는 도로다.

이 도로를 중심으로 여의도에는 봄 가을 꽃 축제가 열린다. 봄에는 벚꽃축제, 가을에는 불꽃축제다. 해마다 벚꽃축제가 열릴 때면 윤중로 전체가 밀려든 인파로 몸살을 앓는다. 새벽 길가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들의 모습도 해마다 뉴스에 오르내린다.

또 매년 10월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열리는 세계불꽃축제 기간에도 윤중로 일대는 혹심한 정체를 빚는다. 불꽃축제 기간에는 주차장을 찾지 못한 시민들이 원효대교나 서강대교 위에까지 차를 세워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기도 한다.

덕분에 서울시민뿐만 아니라 전국민에게도 여의도는 매년 봄철과 가을철 한번쯤 꼭 가보아야 할 명소가 됐다.

 

 

○MSG 감칠맛 여운 진한 미원빌딩

▲ 경쟁업체가 경쟁적으로 조미료 판촉 행사를 하고 있다.(1982)
한국거래소를 지나면 길 건너 오른쪽에 MBC 여의도 본사가 있는 사거리다.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수정아파트 앞 사거리를 건너면 한양아파트 맞은편에 미원빌딩이 나온다.

미원빌딩은 여의도에 연고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미원빌딩은 지상 20층, 지하 4층의 일반적인 사무실 건물이다.

그럼에도 여의도의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랜드마크’가 된 이유는 이 건물이 여의도에 본격적인 빌딩이 지어질 때 세워진데다 지하부터 지상 4층까지 잘 알려진 식당이 많기 때문이다.

여의도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몇 번은 미원빌딩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약속을 잡아 보았거나 술집의 단골이기도 하다.

또 빌딩 이름에서 연상되듯, 이 건물은 1984년 준공 당시만 해도 국내 대표 기업 중 하나였던 미원주식회사(현 대상그룹)의 본사 건물로 신문 지상에 오르내렸다.

당시 정부는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높이는데 주력했다. 서울 중구의 삼성그룹 사옥과 대한항공 사옥, 용산구에 국제그룹이 지은 국제타워(현 용산GS타워) 등이 모두 당시 지은 건물이다.

미원은 MSG 유해성 논란이 일면서 ‘청정원’으로 브랜드를 바꿨다. 대상그룹 측은 MSG의 주요 성분인 글루탄민산나트륨의 유해성은 입증된 바 없다고 밝혔으나 많은 소비자들이 조미료에 길들여졌으면서도 MSG 첨가를 꺼리면서 미원이라는 브랜드가 잊혀지고 있다.

미원은 일본 화학자 이케다 기쿠나에가 1908년 글루타민산 나트륨의 제조법 특허를 얻어은 아지노모토를 뿌리로 한 기업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상은 1956년 순수한 국내 발효기술을 기반으로 최초의 국산조미료 미원을 개발했다고 한다. 이후 미원이라는 자체 브랜드로 1980년대까지 국내 조미료 시장을 이끌어 왔다.

삼성그룹 창업자 고 이병철 전 회장은 ‘미풍’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으나 끝내 미원의 아성을 넘어서지 못했다. 고 이 회장은 대신 제일제당을 통해 백설탕 시장을 차지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미원주식회사는 1986년 (주)미원으로 명칭을 바꿨고 1997년 (주)세원을 합병하면서 대상(주)로 다시 이름을 바꿨다. 그룹 본사도 동대문구 신설동으로 옮겼다. 이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여의도 미원빌딩은 50대 이상 연령층에게만 익숙한 이름으로 남아있다.

미원빌딩 4층의 ‘버블캣츠’라는 생맥주집은 여의도 직장인이라면 한번쯤 들러보았을 만큼 유명하다. 미국 잡지 플레이보이지의 ‘바니걸스’를 연상케 하는 짧은 스커트의 20대 여성들이 정해진 시간마다 스테이지와 홀에서 댄스타임을 선보이는 곳이다.

하지만 음악이나 댄스가 전혀 ‘에로틱’하지도 않고 춤을 썩 잘 추는 편도 아니다. 여의도 직장인들은 그저 색다른 분위기에서 가볍게 한 잔 하기 위해 꾸준히 미원빌딩을 찾는다.

○주가 등락 따라 일희일비, 여의도 풍속도

▲ 여의도는 우리나라 금융경제의 기관·기업이 밀집, 서울의 맨하탄으로 부르기도 한다. 여의도에는 지금도 초고층 사무실 빌딩이 들어서는 등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KBS별관 뒤쪽과 여의도롯데캐슬아이비 사이는 고급 음식점과 주점이 밀집해 있다. 여의도의 룸살롱도 대부분 이곳에 있다. 이곳 술집의 매상은 주가에 좌우된다. 주가가 뛰어오르면 여의도 증권맨들의 씀씀이가 커진다.

증권맨들 뿐만 아니다. 일부 상장사 임원들의 접대가 빈번히 이루어지는 곳도 이 지역의 술집들이다. 일부 기자들도 접대 대상에 포함된다.

특히 새로 거래소 출입을 맡게 된 기자들이 술을 앞세운 꾐에 쉽게 빠진다. 여의도 출입 초기에는 매일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이른 새벽 엉망인 채로 이른바 리서치 기사(주가 분석업체의 시장동향 기사)를 탈고하느라 허덕이는 기자들이다.

특히 코스닥 담당은 ‘업자’들의 노골적인 주가조작에 본의 아니게 가담하기도 한다. 몇 해 전 한 코스닥 상장업체 임원은 한 달 여에 걸쳐 담당 기자들게 술 폭탄을 쏟아 부었다. 해당 업체 기사에 대한 우호적인 기사가 몇 차례 나가고 주가도 띄어 올랐다. 이후 해당 업체는 주식을 모두 매각했고 주가는 하한가를 치기 시작했다.

당시 과정을 지켜보았던 한 기자는 술자리 한 번에 최소 수백만 원 씩은 썼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개미 투자자들만 쪽박을 차게 된 셈이다.

▲ 일년중 날씨가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 절기를 나흘 앞둔 지난달 16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길에서 시민들이 갑자기 내리는 눈을 맞으며 출근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여의도의 밤은 이런 일들이 쌓여 무르익어 간다. 돈이 술을 먹고 술이 다시 돈을 먹고 나중에는 더 큰 돈이 적은 돈을 먹는다. 한국거래소는 이러한 폐단을 줄이고 투명한 주식거래를 통한 경제발전을 목표로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졌다.

이후 1983년 한국증권거래소로 이름을 바꿨고, 2005년 한국증권거래소와 코스닥·한국선물거래소·코스닥위원회가 합병된 한국증권선물거래소로, 2009년 한국거래소로 명칭을 변경했다.

여의도역 5번 출구를 나와 여의도우체국을 지나면 한국거래소다. 증권에 투자하는 수많은 개미군단의 희로애락이 이곳에서 결정된다. 또 하루하루 벤처의 꿈을 키우는 코스닥 상장사 1009개(2012년 10월 현재)와 787개 일반 상장기업의 희비가 엇갈린다.

한국거래소에서 길 건너 대각선 남쪽, 여의도공원 앞에는 금융감독원이 있다.  은행과 보험, 증권사 등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업무를 진행하는 곳이다.

금감원의 결정에 따라 금융회사의 손익이 좌우되기도 하고 때로는 막대한 과징금을 물게 되기도 한다. 금감원장은 금융계 최고의 권력기관이다.

박근혜 정부의 조각과 함께 차기 금감원장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권혁세 금감원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정권이 바뀐 뒤에도 남은 임기를 채울지 여부는 아직 점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금융허브 꿈 남기고 텅 빈 IFC

▲ 지난 2011년 11월 개장식을 가진 여의도 서울국제금융센터(IFC) ‘서울국제금융센터 오피스1'건물이 우뚝 솟아 있다. 사업 시작 9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IFC는 오피스1의 개장을 시작으로 지난해 하반기 나머지 오피스타워 두 동과 복합쇼핑몰, 콘래드 호텔을 오픈했으나 입주율이 낮아 서울시의 부담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발전 방안으로 한동안 ‘허브’를 내세운 일이 있었다. 인천공항을 동북아 허브공항으로, 서울을 세계 금융의 허브로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허브공항괴 금융허브는 여전히 홍콩이 차지하고 있다.이런 가운데 여의도 한국거래소 맞은편  중소기업진흥공단 뒤에 서울국제금융센터(IFC)만 우뚝 들어섰다. IFC는 금융허브 서울을 위해 세운 건물이다.

이명박 서울시장 재직 당시인 2006년 ‘여의도 동북아 금융허브’를 꿈꾸며 서울시가 부지를 제공했다. 이후 AIG부동산개발이 32층 규모의 오피스Ⅰ과 오피스Ⅱ(55층), 오피스Ⅲ(29층) 등을 지어 99년간 임대한 후 서울시에 기부채납하기로 했다.

IFC는 지난해 11월 전면개장했으나 입주사가 턱없이 부족해 아직 대부분의 사무실이 텅 빈 채 남아있다. 가장 먼저 지난해 8월 완공한 오피스Ⅰ만 80% 가까운 선임대율을 보였을 뿐 나머지는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다국적 금융회사 등이 지속적으로 사무실을 축소하고 있어 당분간 입주율을 끌어올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이 여의도 일대에만 앞으로 사무실 건물 12만평이 추가로 세워질 예정으로 IFC는 서울시의 대표적인 부실투자 사례가 될 수 있다.

지하철 5ㆍ9호선 여의도역 3번 출구에서 무빙워크로 연결된 IFC몰도 110개 패션의류 매장 및 CGV와 영풍문고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입점했으나 방문객이 기대에 못미친다는 평을 받고 있다. 회사원들이 대부분이 여의도의 특성상 평일 일부러 IFC몰을 찾는 방문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규모도 인근 영등포역 복합쇼핑몰인 타임스퀘어의 1/10 수준으로 경쟁력이 떨어져 집객효과가 없다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윤석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당시 IFC 시공사인 AIG부동산개발에 특혜를 줬다고 지적, 앞으로 다시 터질 수 있는 뇌관에 불을 붙여놓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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