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함께 돌자 서울 한바퀴 (22) 광진구
다함께 돌자 서울 한바퀴 (22) 광진구
  • 이인우 기자
  • 승인 2013.03.16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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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평강공주 따른 온달의 사랑, 말 달리던 목마장 터는 나눔장터로 바뀌고…

▲ [포털 다음 지도 갈무리]

광진구 자양로에서 잠실대교 북단 강변대로 진입로에 접어들기 직전 우회전하면 자양동 뚝방길로 내려서게 된다. 흔히 뚝방길이라 부르지만 제방 위가 아닌 아래로 이어진 길이다. 이 길을 알고 있다면 서울 샛길을 두루 꿰고 있는 몇 안 되는 시민 반열에 든다. 택시 기사들도 경력이 짧은 이들은 이 길을 모른다.

자양동 뚝방길은 잠실대교 북단에서 성동구와 광진구가 나뉘는 영동대교 북단까지 이어지는 일방통행로다. 길 바로 위 강변북로가 아무리 밀리더라도 이 길은 언제나 원활하게 지날 수 있다. 신호등도 영동대교 북단까지 거의 다 간 지점에 있는 청담대교 북단, 지하철 7호선 뚝섬유원지역 앞 1곳뿐이다. 이 때문에 자양동 뚝방길은 아는 사람만 아는, 강변북로 교통체증에서 벗어날 활로가 된다.

뚝방길을 제외한 자양동의 많은 길은 대부분 지하철을 머리 위에 얹고 있거나 오래 전 만들어진 좁은 도로다. 이런 답답한 골목을 따라 서쪽으로 얼마간 진행하면 갑자기 하늘을 가리는 빌딩과 널찍한 광장이 나온다. 바로 롯데백화점과 이마트, 건국대 등이 밀집한 건대입구역사거리다.

더샵스타시티 등 수십 층짜리 주상복합 단지는 한강변 자양동현대5차아파트 사이의 야트막한 다세대주택이나 단독주택과 대조를 보인다. 자양동은 아는 사람만 아는 일방통행 뚝방길과 그 위쪽으로 난 강변북로의 너른 길의 차이처럼 옛 주택가와 재개발 지역이 공존하는 곳이다.

 감춰진 뚝방길과 마천루 공존하는 마을

▲ 동서울종합터미널은 춘천과 강릉, 속초 등 서울 동북부 지역까지 운행하는 시외버스 노선에 주력했으나 요즘은 경남 함양군의 지리산 백무동을 거쳐 전남 남원시 인월면까지 가는 노선 등 전국 곳곳으로 향하는 버스가 붐빈다.
광진구는 2000년대 이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신도시라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건국대입구가 아무리 화려하게 바뀌어도 지하철2호선 건대입구역 양쪽의 상가는 옛 모습 그대로다.

강변역과 잇닿아 있는 동서울종합터미널도 1980년대 분위기를 벗지 않고 있다. 지하철2호선 강변역과 마주해 있으면서도 흔한 지하 통로가 없어 횡단보도 신호에 따라 수많은 사람이 오간다.

강변역 옆 테크노타워빌딩도 역을 나와 지하보도로 내려서야 한다. 테크노타워 맞은편 강변역 버스환승센터로 갈 때도 건물 밖으로 나와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려야 한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한쪽은 옛 모습 그대로인, 어딘가 어수룩한 분위기가 남아있다. 동서울종합터미널의 시외버스 진출입로는 너무 복잡하다.

이 터미널에서는 하루 1500여 대의 버스가 경기도와 강원도를 중심으로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 충청남북도의 각 지역을 오간다. 여기다 터미널 북쪽의 버스 진출입로에서 강변역 앞을 통해 강변북로 방향으로 나가는 길은 택시와 승용차, 보행자로 붐벼  하루 종일 정체를 빗는다.

여기다 터미널 앞은 1등 당첨자를 2번 배출했다는 로또복권 판매점을 비롯한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어 보행자들의 시야를 가린다. 포장마차는 잔치국수 등으로 간단히 요기하고 지방으로 떠나는 시민들이 몰려 하루 종일 바쁘다.

횡단보도에는 적십자사 헌혈을 홍보하는 자원봉사자와 푼돈을 구걸하는 장애인, 성금을 요구하는 이름 없는 단체 관계자까지 나서서 시민들의 앞을 막아선다. 이런 분위기가 모아져 서울을 오가는 지방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은 이미지를 전하는 광진구의 관문이 만들어진다. 어떻게 보면 촌스러움과 도시적 분위기의 경계지대를 이루는 셈이다.

○꿈 찾아 돈 찾아 부유하는 사람들

▲ 프라임건설의 광진구 테크노마트는 지난 2011년 원인불명의 진동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중에 파악된 진동 원인은 피트니스센터에서 단체로 했던 ‘태보’(태권도와 권투동작을 합친 에어로빅 댄스) 때문이었는데 이는 ‘뜀뛰기-건물 주파수 일치로 인한 상층부 공진현상’으로 설명됐다.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곽재구 <사평역에서> 중 일부

초봄 어두운 저녁 강변역 버스환승센터에서 지하철2호선을 달리는 열차를 보면 곽재구의 시가 떠오른다. 밖에 밤새 송이눈이 쌓이는, 톱밥난로가 지펴지는 대합실은 없지만, 동서울터미널강변역을 끼고 있는 강변역은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이 모인 곳 같아진다.

버스환승센터도 매일 출퇴근 시간이면 남양주와 퇴촌, 하남시 등에서 서울의 직장을 다니는 시민들로 붐빈다. 하루를 경계로 서울과 지방을 넘나드는 사람들이다.

동서울종합터미널은 또 사철 디지털문양의 위장복을 입은 병사들이 지방의 집으로 떠나가나 짧은 휴가를 마치고 강원도나 경기 북부의 부대로 돌아간다.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긴 했지만 20대 초반의 나이로는 결코 짧지 않은 21개월을 나라에 바친 청년들이다. 이런 오가는 사람들 때문인지 강변역을 오가는 저녁 열차는 유난히 더 쓸쓸해 보인다.

강변역과 동서울터미널이 있는 구의동은 전부터 하남·구리에서 출발한 시외버스의 종점으로 교통의 요충지였다. 하지만 구의 1·2동은 대부분 주거지로 남아 강 건너 송파구나 강남구에 비해 개발이 더딘 편이다. 유동인구는 서울 어느 지역보다 많지만 대부분 잠시 지나는 길에 들르는 이방인들이다. 그나마 시민들의 발길을 잡아두는 곳은 강변 테크노마트다.

구의동에서 가장 높은 테크노마트는 한 때 용산 전자상가를 대신하는 IT 관련제품 전문상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세가 크게 약해졌다. 또 지난 2011년 7월 아래층 휘트니센터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진동(共振)으로 건물 전체가 크게 흔들리면서 일시적으로 방문객이 뚝 끊기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테크노마트는 지난해부터 전자제품 종합 쇼핑몰에서 명품 및 의류 브랜드 아웃렛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전자제품 종합 쇼핑몰은 온라인 쇼핑몰에 밀려 더 이상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바보온달 전사한 자리에 고구려 쇠화살촉

▲ 아차산 생태공원의 온달장군과 평강공주를 그린 조형물이 옛 전설을 전한다. 이 지역 주민들은 온달장군이 아차산에서 전사했다고 믿는다.
고구려의 장수 온달이 전사한 아단성(阿旦城))은 지금의 광진구 아차산일까, 아니면 충북 단양군 온달산성일까. 온달은 집이 가난해 밥을 빌어다 어머니를 봉양했다. 언제나 헤진 옷과 떨어진 신발을 신고 다녀 사람들이 ‘바보온달’이라 불렀다.

온달은 후에 평강왕의 공주와 결혼한다. 공주는 어린 시절 평강왕(?~590)이 “네가 항상 울어서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커서 사대부의 아내가 될 수 없겠다.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보내야 하겠다”고 놀린 말대로 해야 한다며 온달을 찾아가 말을 사 키우고 무예를 닦도록 했다.

왕과 신하, 5부의 병사들이 모여 여는 사냥에서 눈에 띄어 장군이 된 온달은 북주의 요동 침략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워 왕의 총애를 받았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바보온달 이야기다.

▲ 아차산 오름길 중턱에 남아있는 옛 산성의 흔적.
그는 평강왕의 뒤를 이은 영양왕(?~618)에게 “신라가 한강 이북의 땅을 빼앗아 군현을 삼았으니, 백성들이 심히 한탄하여 일찍이 부모의 나라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대왕께서 어리석은 저를 못나게 여기지 않으신다면 군사를 주시기 바랍니다. 가서 반드시 땅을 되찾아오겠습니다”며 출정했으나 아단성에서 신라군의 화살을 맞아 전사한다. 장례를 지내려는데 관이 움직이지 않아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며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돌아갑시다”고 말하자 비로소 관이 움직였다.

아차산생태공원에는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상을 세웠다. 아차산에는 온달이 마셨다는 온달샘도 있다. 하지만 단양군에서는 온달산성에서 신라군과 싸우던 온달장군이 전사했다고 주장한다. 근처에 있는 온달굴이 근거라고 한다.

학계에서는 영양왕 당시 삼국의 형세로 볼 때 남한강 상류인 단양까지 고구려가 남하했을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고구려의 쇠화살촉 1500여 점이 출토된 아차산성(사적 234)에서 온달장군과 신라군의 전투가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아차산은 고구려와 온달장군, 그리고 평강공주 이야기의 애달픈 에필로그가 묻혀있는 곳이다.

○왕의 기 꽂았던 둑도에 골프장 만든 사연

▲ 아름다운가게가 한 해 30회 가까이 개최하는 뚝섬 나눔장터는 서울 최대의 벼룩시장으로 30여 만 명이 쓰던 물건을 들고 나와 사고 파는 축제의 장이다.
광진구는 광진교와 천호대교, 올림픽대교, 잠실대교, 잠실철교, 청담대교, 영동대교 등 무려 7개의 한강 다리가 강남구와 송파구, 강동구를 연결한다.

그만큼 강을 끼고 있는 수변 환경이 뛰어나다. 한강시민공원 뚝섬지구는 자연친화적인 산책로와 인공 구조물이 어울린 종합 레저휴양시설이다.

▲ 뚝섬 나눔장터에 참여하는 아이들.
뚝섬은 1954년 국내 최초의 경마장이 들어서면서 마사회의 기틀을 마련한 곳이다. 이후 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인근 채소밭에 9홀 규모의 퍼블릭코스 골프장이 들어섰다. 뚝섬골프장은 1989년 경마장이 과천으로 이전한 뒤에도 남아있다 1994년 문을 닫았다. 바로 지금의 서울숲이 골프장이 있던 자리다.

뚝섬은 아차산과 함께 조선을 건국한 태조 때부터 임금의 사냥터로 쓰이면서 대장을 상징하는 둑기(纛旗)를 꽂은 섬, 둑도(纛島)라 부르기 시작했다. 둑기(纛旗)는 대가(大駕·임금이 타는 수레)나 군대의 행렬 앞에 세우던 대장기(大將旗)를 말한다.

둑도라는 이름은 ‘뚝도’로 음운이 바뀌어 성동구 성수동과 광진구에서 많이 쓰고 있다. 성수동의 재래시장 이름이 바로 ‘뚝도시장’이다. 말과의 인연은 일제강점기에도 계속돼 1922년 이곳에 조선경마구락부가 발족했다. 구락부는 영어 클럽(club)의 일본식 조어(造語)다. 조선경마구락부는 광복 후 한국마사회가 됐고 뚝섬경마장까지 세웠다.

▲ 전국 대부분 지방에 폭염특보가 발효된 지난해 8월 5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뚝섬 한강공원 수영장을 방문한 시민들이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피하고 있다.
지금 뚝섬 한강공원은 면적 82만5000㎡, 총연장 11.5㎞의 규모로 여름에는 수영장, 겨울에는 눈썰매장을 운영하는 등 시민들의 위락시설을 제공한다. 인공암벽장과 X게임장, 수변광장 등도 다른 한강공원에서 갖추지 못한 시설이다.

이같은 시설 외에 뚝섬 한강공원에서는 동절기를 제외하고 매주 토요일 아름다운가게에서 위탁운영하는 ‘나눔장터’가 열려 시민들의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기) 실천의 장이 되고 있다.

▲ 뚝섬 나눔장터에 참여하는 아이들.
2004년 문을 연 뚝섬 나눔장터는 지난해까지 누적 방문객 309만 명, 621만 점의 재활용 물품 매매 실적을 올렸다. 이들 재활용 물품은 5톤 트럭 1200대 분량으로 그만큼 생활쓰레기를 줄인 전국 최대의 벼룩시장이다. 나눔장터의 주인공은 사용하지 않는 물품이나 책 등을 갖고 나와 싼 값에 판매하는 시민들이다.

많은 시민들이 재활용품 판매를 벌이 수단이 아닌 ‘나눔’으로 여기고 판매수익의 10%를 ‘아름다운 가게’에 자발적으로 기부한다. 아름다운 가게는 이를 모아 지금까지 수익금 중 일부인 2억4800만 원을 공익사업기금으로 내놓았다.

○호랑이 늑대 득실대던 아차산

▲ 아차산 정상에서 바라본 3월의 북한산의 능선과 서울 장안동 일대 전경이 생각보다 높은 고도감을 준다.
아차산(287m)은 광진구에서 멀리 경기도 구리시까지 이어진 야트막한 산줄기다. 백두대간에서 갈린 광주산맥의 끄트머리다. 조선 중기까지 이 일대는 말을 키우는 목마장으로 인가가 드물고 수풀이 무성했다고 한다. 호랑이, 늑대 같은 많은 야생동물도 많아 조선 초 임금의 사냥터로 이용됐다.

지금은 멀리서 보면 나무가 별로 없고 높이도 낮아 산세가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용두봉까지 올라가면 멀리 북한산 능선과 백운대, 인수봉에서 도봉산까지 한 눈에 보인다. 남동쪽으로는 남양주 예봉산과 운길산이, 남쪽으로는 강남구 삼성동의 무역센터를 비롯한 빌딩군과 북서쪽 남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 1970년대부터 서울특별시는 이 일대에 아차산공원·용마공원·용마돌산공원 등 도시자연공원을 조성했다.

아차산은 조선 명종 때 점을 잘 치는 것으로 유명한 홍계관의 민담 유명하다. 명종이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쥐가 들어 있는 궤짝으로 능력을 시험했고 그가 숫자를 맞히지 못하자 처형하라 명했다. 얼마 후 암쥐의 배를 갈라보니 새끼가 들어 있어서 ‘아차’하고 사형 중지를 명했으나 간발의 차이로 늦어 홍계관을 참수하고 말았다.

이후 사형집행 장소의 위쪽 산을 아차산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남쪽을 향해 불뚝 솟아오른 산이라 하여 남행산이라고도 했고, 토박이 마을사람들은 아끼산·아키산·에께산·엑끼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주말이면 북한산이나 도봉산보다 가벼운 산행을 즐기려는 시민들이 많이 찾는다. 산행코스는 길어야 2시간 30분을 넘지 않는다.

○마지막 황태자비 묘 있던 능동

▲ 지난해 5월 말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며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광진구에는 1970~80년대 우리나라 문화사절 역할을 했던 ‘리틀엔젤스’의 산실이 있었다. 지금 어린이대공원 후문 진입로에 있는 유니버설아트센터에 있던 리틀엔젤스 예술회관이다. 리틀엔젤스 예술회관은 1981년 통일교 소속인 학교법인 선화학원(현재 학교법인 선문학원)에서 개관했다. 1970년대 해외공연 녹화중계의 주인공이었던 리틀엔젤스의 총본산이었던 셈이다.

통일교에서 운영하던 리틀엔젤스는 문화적 자산이 빈약했던 당시 한국이 내세우는 거의 유일무이한 문화콘텐츠였다. 리틀엔젤스회관은 2006년에 개축과 보수 공사를 거쳐 유니버설 문화재단 산하의 재단법인 공연장으로 재개관했다. 현재 유니버설아트센터에는 명칭 변경 이전부터 상주하고 있는 리틀엔젤스 예술단과 유니버설 발레단이 상주 공연 단체로 입주해 있다.

유니버설예술회관를 지나면 어린이대공원 후문이다. 어린이대공원 정문은 군자동 지하철7호선 어린이대공원역에서 후문은 지하철5호선 아차산역에서 가깝다. 때문에 지하철7호선 개통 전까지 자동차를 가져 가지 않는 가족에게는 후문의 접근성이 훨씬 좋았다.

▲ 어린이대공원 개원식이 열린 1973년 5월 5일. 이날 30만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어린이대공원은 1973년 5월 5일 어린이날 개장했다. 서울시에서 순종의 순명효황후의 능터 부지에 있던 서울 컨트리클럽 골프장 용지 중 12만평을 기증은 뒤 10만 평을 더해 1972년 착공, 불과 1년만에 개장했다.
어린이대공원에는 지금도 순명효황후의 능 터인 유강원(裕康園)에 석물이 남아있다.

능은 1926년 순종이 죽은 뒤 지금의 남양주시 금곡동(金谷洞)에 있는 유릉으로 이장해 석물만 남게 됐다. 순명효황후 민씨는 구한말 권신인 민태호의 딸로 1897년에 황태자비(皇太子妃)로 책봉됐으나 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인 1904년에 33세로 죽어 어린이대공원 자리인 유강원에 장사지냈다.

능동이라는 동명도 유강원의 다른 명칭인 유능(裕陵)에서 따왔다. 어린이대공원은 2009년부터 입장료를 받지 않고 각 시설별, 서비스별 일부 시설의 이용료만 받는다. 주요시설은 동물원과 식물원, 놀이동산, 야외음악당, 음악분수 등이 있다.

○서울 최고 결혼 명당 워커힐 호텔

▲ 1963년 사단법인 워커힐이 개관한 워커힐호텔은 1973년 SK그룹의 전신 선경개발(주)에서 인수한 뒤 1977년 호텔 체인업체인 쉐라톤과 프랜차이즈체인 계약을 체결, 현재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호텔, W서울 워커힐 호텔 등을 운영하고 있다.
아차산 산줄기는 북쪽 한강변에 한 자락을 늘어트렸다.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남한강 물길이 하나가 되면서 서울로 흘러들어오는 팔당에서 멀지 않다.

경관이 뛰어난 이 산자락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휴양지가 만들어졌다. 멀리 강원도 고성 화진포의 별장 외에 서울 가까운 곳에 만든 이승만 별장이다. 지금 별장 자리는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이 들어서 있다.

워커힐이란 지명은 6·25 당시 미8군 사령관으로 서울수복을 지휘한 해리스 월턴 워커(Harris walton walker) 장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워커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조지 패튼 장군 휘하 군단장으로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나치의 롬멜부대를 격파했던 지휘관 출신이다.

그는 1950년 12월 아들 샘 S. 워커 대위의 은성무공훈장 수훈을 축하하기 위해 가던 중 의정부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당시 정부는 그를 기린다는 뜻에서 광진구 광장동의 아차산 기슭에 워커힐이란 이름을 붙였다.

세라톤 그랜드 워커힐호텔은 1963년 (사)워커힐이 개관했으나 1973년 선경개발㈜이 인수, 현재 SK네트웍스㈜ 워커힐이 운영하고 있다. 풍수가들은 워커힐 호텔을 배산임수의 명당으로 꼽는다.

이 때문에 워커힐호텔은 호사가들의 결혼 명당으로 각광받고 있다. 또 호텔 뒤편 아차산 중턱 숲속의 빌라와 에스톤 하우스 등은 일반 시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특권층의 호사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지난 2004년 개관한 W호텔은 주로 부유한 서울의 젊은 층이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을 내세우며 찾고 있다.

○서울 4대 대학가 상권 떠오른 건대입구

▲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아래 이면도로에 있는 먹자골목은 인근 건대입구역 상권에 밀려 빛을 잃었으나 상인들의 활성화 노력에 따라 시민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건국대입구는 2010년을 전후해 서울의 새로운 상권으로 떠오른 곳이다. 건대입구역이 지하철 2호선과 7호선 환승역이 되면서 패션 로데오거리와 맛의 거리가 형성돼 신촌, 성신여대입구, 홍대입구와 함께 대표적인 대학가 상권이 됐다.

건대입구역의 5번 6번 출구 뒤쪽 방면은 패션 상권이 들어선 로데오거리다. 하지만 먹자거리 만큼 활성화되지 않은데다 최근 커피전문점이나 호프집이 늘어나는 추세다.

건대입구역 인근이 뜨는 상권이라면 구의동 먹자골목은 맥이 빠진 분위기다. 구의역 1, 2번 출구 앞 이면도로의 먹자골목은 전형적인 재래상권으로 과거 붐비던 모습을 찾기 어려워졌다. 구의동먹자골목 상인들은 상권을 되살리기 위해 지역 차원의 활성화에 힘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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